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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03. 2022

10일 차

2022. 05. 02

Q. '우리 집'이 다른 집과 크게 달랐던 것이 있다면요?

모든 게 다르고 모든 게 같았을 겁니다. 그중 좋은 것들에 대해서 말해보죠. 내가 우리 집을 '공간'으로 기억하는 것은 네 살 때부터인데 베란다 창밖에 나무들이 드리워진 집이었습니다. 내 기억이 아닌 엄마의 말을 덧붙이자면 그 집은 1층 집이었다고 해요.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 놓았고, 나는 아침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아침을 즐겼습니다. 화장실 바로 앞까지 베란다 나무들이 아침 햇살과 함께 만들어낸 그림자들이 아른거려서 평화롭고 따뜻한 느낌을 주거든요.

아홉 살 때 나는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 5층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 내가 가졌던 방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책상 너머의 창밖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를 내려다볼 수 있었거든요. 그 아파트는 놀이터가 3개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작고, 하나는 너무 멀고, 내가 좋아하는 놀이터는 가장 적당하면서도 아주 고운 모래들이 마련된 구역도 있었죠.

우리는 부자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시절 가졌던 창을 나는 꽤 만족했던 것 같아요.


Q. 가족이 여행이나 외식을 자주 했나요?

외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양념 갈빗집. 특정 식당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외식'을 하자고 하면 으레 양념갈비를 먹으러 가겠구나 하는 거지요. 그래도 특정 지어 기억나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그곳의 오이 물김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오이랑 통후추랑 지금도 무엇인지 모르는 어떤 열매를 함께 넣어 담근 것 같았는데 그 맛이 참 그립네요.

또 하나는 경양식 식당. 그때는 메뉴가 다양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럴싸한 곳을 가면 모닝빵에 버터도 주고, 수프도 주고,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를 하나씩 주는 모둠 가스 정식도 있었죠. 이것도 외식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하철로 1-2 정거장 떨어진 곳의 작은 백화점이었는데, 그 지하에 파는 모둠 가스 정식과 철판볶음밥이 정말 일품이었어요.


Q. 어릴 때 잘한다 소리를 들었던 재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는 말도, 글도, 음악도, 미술도, 공부도, 배우는 것이라면 대부분 꽤 잘했습니다. 몸으로 하는 것은 그다지 칭찬받아본 적이 없지만요..ㅎㅎ 모든 배움이 그렇듯 처음에는 신동처럼 보여도 그 끝은 알 수가 없죠. 그 알 수 없는 끝이 어떻든 간에 그저 재미있게 즐겨서 할 만한 것들을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Q. 어려서 동네 사람들에게 '쟤는 커서 OO가 될 거야'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나요? OO가 뭔가요?

엄마는 나를 아들처럼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머리 스타일도 바가지처럼 자르거나 삼각김밥처럼 뽀글뽀글하게 볶아버리는 등 전형적인 계집아이들의 형상을 따르길 거부했죠. 내가 정말 갓난아기일 때는 사람들이 장군감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네요.


Q. 당신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어땠어요?

나는 살아오면서 종종 엄마에게 엄마는 내가 천재인 줄 알고 많은 오류를 범했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엄마의 기대가 항상 과하게 느껴졌고, 그 기대로 인한 투자가 나는 늘 죄책감이 들었거든요.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나는 여섯 살 즈음엔가 영재 인증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는 것이죠. 엄마는 돈이 없어서 영재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고 해요. 영재 교육을 받았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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