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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5. 2022

33일 차

2022. 05. 25

Q. 당신을 처음으로 알아봐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알아봐 주었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치켜세워주는 것에 방점을 둔다면,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났던 은퇴를 앞두신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성함은 조동산. 그는 매우 엄격한 선생님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혼이 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지적을 받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는 그의 긴 교단 생활에서 잊지 못할 몇 안 되는 학생으로 나를 꼽은 듯했습니다. 왜였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공부는 얼추 잘했을 거고, 반장도 했던 것 같고, 뭐 그렇습니다. 내가 엄마를 따라 그 동네를 떠난 이후에 엄마와 나는 그분을 한번 다시 찾아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100살이 넘도록 살아계실 것만 같았는데, 글쎄요. 그분이 지금 살아계신다한들, 나는 그분을 뵙고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분의 성함만큼은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Q. 지금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아봐 줘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괜찮습니다. 언젠가 아는 오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참 별난 사람이어서, 꽤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싸우기도 했습니다. 뭐 그럴듯한 관계까지도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그 오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 정도면 괜찮지"가 아니라 "나는 괜찮지"라고 말했으면 좋겠어.

나는 그때도 어렴풋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었고, 지금도 그 말의 의미를 적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듣고 살아오던 어느 날부터, 괜찮음의 어떤 정도가 있다는 전제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여러모로 이미 괜찮다는 것을 알아봐 주고 싶습니다.


Q. 만약, 내가 타인이 되어 나 자신을 처음으로 만난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말을 걸기 어려운 사람, 왠지 어딘가 궁금한 사람, 친절하게 대해야 할 것만 같은 사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을 것 같은 사람, 너무 섬세해서 어려운 사람, 얘기 나누고픈 사람, 일정 거리 이상으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럼에도 알고 지내도 좋을 것 같은 사람,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 자신만의 원칙이 있을 것 같은 사람,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사람, 대하기가 조심스러운 사람.


Q. 나의 베스트 버전은 어떤 모습이에요?

베스트 버전이라는 표현이 재미있군요. 나의 베스트 버전을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비에 쫄딱 젖어도 즐겁고, 걱정하지 않는 모습. 지금 이 순간이 초래할 어떤 경우의 미래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초래했을 어떤 경우의 과거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이 너무 즐겁고 기쁜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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