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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4. 2022

32일 차

2022. 05. 24

Q.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가장 크게 자리한 것은 무엇인가요? 

영성. 영성을 모르는 자들이 추앙하는 모든 작품에서 다루어진 영성. 나를 배척하고, 내가 한 때는 배척했을 자들이 추앙하는, 그들을 이해해보기 위한 나의 노력에서 만난 영성.


Q. 그것을 더 키우고 싶나요? 줄이고 싶나요? 어떻게 키울/줄일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질문이군요. 키울 수 있다면 키우고 싶습니다. 이것은 글쎄요. 키운다는 말보다는 깊어진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깊어지게 하냐고 묻는다면, 현혹되지 않는 것, 판단하지 않는 것, 항상 깨어있는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만 할 수 있겠죠. 더 쉬운 말로 설명을 하자면 그런 것일 겁니다. 나의 몸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괴로움은 괴로움일 뿐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부터 창조되었고,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 여기서 막히는 포인트가 생깁니다. 그래서 '참된 나'와 연결시키는 법을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뭐, 언젠간 알게 될 겁니다. 그때는 감히 내가 나의 영성이 깊어졌노라 말할 수도 있겠지요.


Q.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 중, 가장 나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순간순간들이 있었지요.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꽤 많은 순간을 나답게 보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 영혼은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겠죠.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점점 너무 이쪽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눈치를 보게 됩니다만은. 이방인이라는 것이 좋은 점은, 내가 그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교묘히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영국인이 아니고, 나는 영국을 꽤 아는 사람으로서 그것의 불리함보다는 유리함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마리라는 한 개인으로서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속하고 속하지 않고 와는 무관한, 내가 이 세상에 굳이 적응할 필요가 없음을, 그럼에도 내가 이 세상을 꽤 살아보아 안다는 것이 유리한 뭐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순간이 있었냐면, 나는 이방인으로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 덕분에 '세월호'에 대한 나의 진심을 마주하고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모두가 예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어떤 형상으로든 수일 내에 부활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관점만으로 마주하기에는 너무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나는 그 희생이 너무도 고귀하고 경이롭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느 축축한 저녁, 시내 중심부의 한 펍에서 내가 가장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나의 이러한 직감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나는, 런던의 여유로움과 우리말을 쓸 때의 자유 속에서 참으로 나다웠습니다.


Q. 지금까지 당신의 삶을 3가지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깨달음, 진화, 자유. 자유는 의도이자 결과이며, 진화는 현상이고, 깨달음은 반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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