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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6. 2022

34일 차

2022. 05. 26

Q. 당신에게 친구가 생긴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나는 다섯 살 때 예인 미술학원에 보내졌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친구가 생겼겠지요. 친구를 사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학원에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원은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언젠가 언급을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민아, 슬기, 보람이, 성욱이, 승현이, 영훈 오빠, 재윤이.. 그런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Q. 당신의 가장 오랜 친구는 언제 만난 누구 인가요?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부정교합으로 인한 교정 중이었고, 매일 아침마다 잘 때 끼고 잔다던 기구가 얼굴에 자국으로 남아있은 채 학교에 왔습니다. 빨간 뿔테 안경, 마르고 기다란 친구였죠. 그 친구의 첫인상은 또라이였는데, 나는 2학년이 시작되면서 처음엔 그 친구와 별로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학교는 급식실 공사로 인해 도시락을 지급했습니다. 나는 우연히 그 친구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며, 어려운 이야기를 덜컥 꺼내놓더군요.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덜컥 꺼내지 못했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도 이렇게 쉽게 얘기해도 되는 걸까? 하는 묘한 안도감과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리곤 용기를 내어 그 친구에게 "너도? 나도.."라고 말을 했지요.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뻥이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와 거진 15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고, 우리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인연을 끊었지요. 아마도 그 사소한 계기 뒤에는 수많은 신호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내가 그 친구에게 해야 할 말을 잘 전하고, 하지 않을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친구는 내 옆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를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서운했고, 소원해졌으며, 아주 작은 타격에 쩍 하고 갈라져 버렸습니다.


Q. 그 친구는 한마디로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그 친구를 내 일기장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오며, 내가 잊어버린 나를, 내가 잊어버린 순간들을 책갈피처럼 찾아내어 주었거든요.


Q. 당신은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귀는 편인가요?

중학교 때부터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이상 편하거나 쉽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안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것을 숨기고만 있는 것이 힘들었으며, 그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위로를 받을 수 없어 외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가끔씩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종종 많은 사람들이 내게 먼저 손 내밀어 주었습니다.


Q. 당신은 친구를 사귀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나요?

나는 소위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단짝', 허물없고 서로의 수치심을 웃음으로 소화시켜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 가까운 관계로 지내는 친구는 없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과 최대한의 거리를 두며,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안에서 Zoning 되어 있죠. 그래도 Zone 2에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대학시절 만났으니 이제 10년이 넘었군요. 우리는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고,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와 아주 오래, 어쩌면 다른 삶에서도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가리란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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