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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7. 2022

[격리중讀] 베트남 쌀국수

피프티 피플 - 정세랑

백만 년 만에 읽는 소설이었다.

어느 날부터 책은 명확한 필요와 목적이 없다면 잘 펼 쳐들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번에도 역시 의무감에 쫓기듯 손에 쥐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보를 가득 담은 책보다는 작고 얇은 낱장으로 이루어진 책,,

그래서 오른손에 쥐어진 남은 분량이 평소 읽던 책 보다 더 많은 낱장으로 이루어졌다는 두툼함을 인지하면서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빠르게 빠져들어 읽혀갔음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무슨 책을 보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우스갯소리로 '오십연놈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머리에 꽂힌 사람들이 있다.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장유라>, 내가 되고 싶은, 만나고 싶은, 좋아하고 싶은 사람인 <지선미>, <이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윤나>.


최근에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지만,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나만 보아도, 내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의 '관계'를 형성하는 캐릭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문득 매일매일의 나의 일상 속 내가 알아서 만나고, 내가 몰라서 만났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 나의 삶이 상당히 불행하다고 믿고자 했었다.

딱 봐도 누가 봐도 안전하지 못한 찰나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떤 선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나에게는 어떤 명확한 선이 있었다. 그 선이란 삶의 수치심을 가르는 무언가였는데.

더 이상 그 수치심을 참을 수 없어서 죽어버리거나 죽는 것 만도 못하게 사는 것을 가름하는 선이었다.

어쩌면 그 선이 이 책의 대부분의 연놈들보다는 높았으리란 생각으로 시작하여,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끝이 난다.

삶의 수치심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아니 상식적으로 혹은 통상적으로 당연히 안전해야 하는 것들이 보장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던가?


지금의 나는 그 선을 인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해졌다.

내가 살면서 만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선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안전해 보였다.


책 속의 모든 연놈들이 다 나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살면서 만났던 모든 연놈들이 다 나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묶인 연놈들 중의 일부라고 생각해본다.

작가가 그 연놈들을 한 권에 책 안에 묶어놓으려고 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무심하면서도 정이 가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연놈들'이라는 말이 그저 '사람들'이라는 말보단.

나랑 언제나 상관이 없지만, 언제나 상관이 있어질 수 있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어우러져 어떤 비슷한 지점을 오간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아 서로가 위로가 되는 지점.

나의 안전함을 너의 안전하지 않음에 보탬으로 보내는 지점.

나의 안전하지 않음이 누군가의 안전함을 건드리는 지점.

등..


정세랑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베트남 쌀국수 국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장인이 하는 쌀국숫집엘 가면 국물을 내기 위해 정말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다양한 재료들이 각기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어우러진다.

우리가 흔히 자각하는 단 맛, 쓴 맛, 매운맛, 짠맛, 신 맛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심심하면서도 깊은 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또 생각이 난다.

위로받고 싶은 어느 날,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필요한 어느 날, 안전한 곳이 필요한 어느 날, 살아있다는 게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는 어느 날...

어우러져야 그 맛이 난다.

어우러져야 위로가 된다.


덕분에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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