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 구정은 & 이지선
책의 시작은 상당히 암담했다.
가까스로 세상은 잘못되어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언제 코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때에만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음을 나는 수년 전에 깨달았다.
내가 나의 세계 안에 갇혀 취해 사는 동안에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졸업 논문과 작품에서 나는 기술 발달의 폐해와, 인간의 가치판단력에 대해 뜨겁게 외쳤다.
내가 나의 세계의 문을 열고 그곳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꼭 세상이 망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적으로 알기를 거부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비겁한 저항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음에 대상이 불분명한 유감을 느낀다.
책을 읽어갈수록 우리 사는 세상의 완벽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명과 암이 공존하는, 명과 암으로써 균형을 잡는, 명과 암을 다해 비로소 완벽해지는 세상.
그리고 나 역시 암보다는 명을 더 많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스타링크가 쏘아 올려지고 지구를 넘어 우주의 아름다움까지 인간의 손이 닿았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스타링크가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비춘다.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이원성의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 그리고 또 같이 어떠한 균형을 끊임없이 잡으며 나아가고 있다.
책을 다 보고 나서야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역시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계속 믿어도 될 것만 같았다.
이 책이 대변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가치, '불평등'.
인류는 더 오래 '평등'을 외쳤어야 했을까. 아니면 우리는 다시 한번 '평등'을 외쳐야 할 때를 맞이한 것일까?
민주주의라는 '평등'과 자본주의라는 '불평등' 속에서 인류는 다시 한번 대차게 균형을 잡을 기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만 같다.
당장의 주어진 삶을 더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소수일지 몰라도
인간의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다수이기에.
지금의 세상에서는 내가 설령 세계 1%의 부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세상이 '평등'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문제에 관심조차 없겠지만..)
평등이라는 것은 남들보다 얼마나 가졌는지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기본권이 보장되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평등에서의 기본권은 고작 '생존'따위는 보란 듯이 넘어선 자아실현의 기본권이기를 소망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꿈이지만
언젠가 재단을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평등'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다.
덜 불평등해서 '평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불평등'에 관심을 가지고
10년 후 우리 사는 세계에는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아마 교육에서부터 시작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교육은 불평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선한 진화를 또 한 번 이뤄낸 인류이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