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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31. 2022

39일 차

2022. 05. 31

Q. 친한 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나요?
Q.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화해하나요?

앞에서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더러 했던 기억이 납니다. 때는 바야흐로 그 친구의 결혼식 이틀 전이었죠. 나는 그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매우 예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재정적인 결여와 부족에 시달리는 듯했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매몰되어 있었죠.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공감해주지도, 그녀가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돕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초년생이 되면서 나의 가계 관리는 사실상 엉망이었습니다. 엉망이라고 말할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지만, 나는 억눌려온 욕구를 위해 꽤 느슨하게 계획을 지키느라 종종 수입을 초과하는 소비를 하곤 했습니다. (뭐, 사실 지금도 그래요..ㅎ) 그래서 한 번씩 부수입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그 당시 내가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나의 과소비를 메꾸고, 그 친구의 축의금을 넉넉히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가 결혼을 준비할 즈음에 나는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퇴직금도 받았겠다, 곧 있으면 서른이겠다, 좀 좋은 옷을 입어보고 싶더군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쇼핑을 거의 한 적이 없고, 내가 가진 옷은 대부분 20대 초반에 엄마가 사줬던 옷이었으니까요. 당시 나의 선택은 분명하게 나의 죄책감을 건드렸고, 나의 어떤 부담감을 증폭시켰죠. 나는 여느 때처럼 내가 주문한 옷들을 캡처해서 어떤 것 같냐고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우 비싸. 저런 데에 돈을 어떻게 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죠. 아마도 나는 그 친구가 너무 예쁘다, 잘 샀다고 말해줌으로써 나의 죄책감과 부담감을 눌러버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친구는 나의 죄책감과 부담감을 폭발시키는 발언을 해버린 겁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쓴다는데 네가 뭔데라는 식의 반응을 했었겠죠? 뭐 그렇게 우리는 서로 잘 살아라. 하는 식으로 화난 대화를 끝맺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결혼을 앞둔 그 친구의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게 될 가장 주요한 인물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친구의 화를 풀어보려 애썼지만, 친구는 냉정하게 잘라내 더군요. 그리고 나는 도저히. 도저히. 그 친구의 결혼식에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당시에 내게 꽤 큰돈을 축의금으로 부쳤고, 그 친구는 결혼식 다음날, 다시 돌려줄 테니 계좌를 알려달라는 카톡을 보내더군요. 나는 그 카톡을 기점으로 그 친구를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서 서로를 OUT 시켰습니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화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해야 하는지도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들으면 늘 그런 장면이 떠오르죠. 유치원에서부터 분명히 친구랑 싸우면 "미안해", "괜찮아"하고 화해하는 거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대화가 그토록 어려워졌을까. 나는 넷플릭스의 [Anne With An E(원작: 빨강머리 앤)]을 정말 좋아하는데, 매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과를 할 줄 아는 어른들, 용서를 할 줄 아는 어른들, 화해를 할 줄 아는 어른들, 우리 사는 세상에는 없는 어른들, 내가 아닌 어른들, 그리운 어른들에 대해서요.

지금의 나라면 그 대화를 그렇게 흘러가게 놔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이별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뭐 어쨌건 나는 그 친구를 잃었고, 그 옷을 모두 환불했고, 그 옷의 반값도 안 되는 싸구려 옷들을 샀다가 1년도 채 못 입고 모두 버려 버렸죠. 아마도 그때의 나는 어떤 종류의 '상실'을 경험했어야 했나 봅니다.


Q.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싶을 때 당신이 자주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신뢰를 얻죠.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들려면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뢰를 주거나 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그런 사람을 움직이고 싶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상대가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이 질문과 대답이 모두 참 오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에요.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오만입니다. 사실 당신이 내 뜻에 따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거겠죠. 그러면 그 마음을 움직이면 됩니다. 나에게서 상대방으로요. 그 진심과 간절함과, 그럴 수밖에 없는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면 됩니다. 거기서 두려움이 들걸랑, 멈춰야 합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내 마음이 여기서 꼼짝도 못 하고 있을 거니까요. 그 마음은 결코 솔직하게 상대에게 가닿지 않을 겁니다.


Q.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친구는 누구예요? 그 친구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요즘 부쩍 잃어버린 그 친구를 떠올릴 일이 많습니다. 나는 이 질문을 받기 전부터 그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하여, 그 모든 과거의 균열들이 없던 것이 되거든, 하다못해 우리가 새로 무언가를 지을 수 있는, 짓고픈 상태가 되거든, 나는 어느 한적한 호숫가에 그 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고 싶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그 인기척을 느끼고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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