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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30. 2022

38일 차

2022. 05. 30

Q. 누군가와 헤어지는 고통을 크게 경험한 적이 있어요?

아마도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는 무감각한 것을 선택했고 줄곧 선택해왔기 때문에. 하지만 무감각은 고통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했을 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어쩌면 그게 커다란, 아주 커다란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Q. 언제 누구와의 헤어짐인가요?

아빠가 나를 버렸을 때, 엄마가 매일같이 나를 버릴 거라 말할 때,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외에도 모든 연애의 끝은 다 아팠죠.


Q. 그 고통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어떤 고통은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해결이 되었어요. 어떤 고통은 아직도 극복되지 않았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별을 하고 나면, 저항할게 없어져요. 저항할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항을 하려야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이별의 직후는 아주 많이 아프죠. 너무 많이 울어서 밥을 먹지 못하고, 너무 많이 울어서 잠에 들지 못하고요. 아무런 저항이 없죠. 욕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지만,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는 저항이에요. 그러니까 지속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 달이면 충분했던가 봅니다.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고통들은, 제대로 이별하지 못해서 저항하지 못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 남아있는 고통 들일 겁니다.

Q. 상실의 아픔을 크게 겪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스승님으로 모시고픈 분이 제게 늘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어요. "똑바로 봐야 한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똑바로 보세요. 왜 아픈지. 아픈 게 나쁜 건지. 아픈 건 그냥 아픈 겁니다. 아픈 건 결국에는 사라져요. 사람이라면 누구도 영원히 아플 수는 없습니다. 아픈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가 상실한 그 대상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워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더 아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항합니다. 그것을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부르죠. 있는 그대-로 보세요. 두려운 건 사실이 아니에요. 걱정이고 환상이죠. 내가 그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직면하면 아픔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고통을 극복하는 일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안에 얼마나 커다란 사랑이 있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나 역시, 그것을 인정한 이별은 극복했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는 이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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