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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28. 2022

37일 차

2022. 05. 29

Q. 지금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누구인가요?

Q. 그들과 만나면 주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의 연인이자, 가족이자, 동료이자, 가장 좋은 친구가 한 명 있지요. 우리는 의무와 자유가 뒤섞인 마음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내려고 마음을 쓰고, 특별한 곳을 가려고 마음을 쓰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헤아리려 마음을 씁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 그 의무를 기꺼이 선택하고, 익숙함 안에서도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하죠. 나는 오랜 시간 내가 버림받는 것을 참 두려워했습니다. 때때로 그가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지, 여전히 그의 자유로 이 모든 의무들을 기꺼이 선택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무리인 것, 억지인 것은 없는지를 노심초사 관찰하기도 했죠.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집중하면, 사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감사한지에 집중을 하면, 내가 그에게 얼마나 감사할 수 없는 지를 생각할 수 없어지는 것과 같죠. 나는 그와 시간을 보내며, 그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내 모습을 찾고, 뒤적이고, 고르고, 뻔뻔하게 꺼내보입니다. 나의 그런 선택에도 한결같이 손을 잡고 웃어주는 모습에 감사하며, 오늘도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되새겨봅니다.


Q. 만난 지 오래됐지만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Q. 그녀는 누구이며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는요?

Q. 그녀를 만나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앞서서 소개한 적이 있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 나의 가족. 그러게요. 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이 몇 명 있었네요. 그녀와 이별한 이후부터, 전해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욕심 같아서 전하지 않는 선택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아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요) 우리가 결국 친구라는 관계로부터 갈라지기 그전에 내가 하지 못했던 말들과, 그 이후에 매일같이 들었던 말들을. 그냥 어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허브티를 한잔 내려놓고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 나는, 어느 날부터 네게 너무 죄인 같아서, 그냥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었어. 너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늘 내가 먼저였고, 늘 내가 먼저일 수 있어서 너를 소중히 여겼던 것은 아니었어. 언제나 네 삶의 일보다는 내 삶의 일이 더 커서, 그게 때때로는 너에게도 더 큰 일이어서. 네가 의무적으로 나를 챙기는 것 같은 모든 순간이 참 눈치가 보였어. 서툴러서 이기적이었고,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어. 어느 순간부터 너는 내가 필요 없어졌고, 나는 네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라게 되었고, 나는 매일매일 네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너를 기다리며 살기도 했어. 뭔가를. 털어놓을 사람이 너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저 너한테만 말할 수 있어서 네게 쏟아낸 것뿐이지, 네가 내게, 내가 마음껏 배설해도 되는 그런 존재인 적은 없었어. 아니, 더 어렸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내가 나의 힘으로 내 삶을 살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나는 늘 네 옆에 죄인으로 있었어.

세상에서 나의 행복을, 내가 사랑받기를 가장 많이 빌어준 사람이 있다면 너였을거야. 나는 지금도 아직은 너였을 거라고 생각해. 네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는데, 네가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 그런 대화를 나눈, 네게 오랜 시간 죄인이었던 내가, 감히 너를 보러 갈 자신이 없었어. 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는 모습을 우리가 언제나 그래 왔듯 계속해서 공유하며 지켜보고 싶었어. 언제까지나 내가 네 일기장이고, 네가 내 일기장이어서 책갈피 뽑듯 지나온 한 장면들을 선물해주는 관계이기를 바랐어.

그리고 네 삶의 기쁜 순간을 내가 보며 행복하듯, 내 삶의 기쁜 순간을 네가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너는 어쩌면 나와 친구를 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의 기쁜 순간을 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지금 내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꼭 너 같은, 네가 나를 많이 칭찬해줄 것만 같은, 네가 나보다 더 기뻐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았어.

뭔가를 돌이키고 싶지는 않아. 나는 그저, 계속 너무 어렸고, 너무 힘들기만 했던 나의 죗값을 네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갚고 있어. 그게 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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