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한해용 카메라

by 그믐

연말연시를 소중한 사람과 보내라는 말은 그만큼 함께 나눌만한 소중한 것들이 많기 때문일것이다. 어디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어디서부턴 기대치 말아야하는 지는 모르겠다만 사실 그 오묘하고도 감격적인 순간은 두 초의 사이었다. 곧 떠나감을 앞두고 365일을 흘러오느라 낡고 변색된 12월 31일 11시 59분의 59라는 이름의 초와 1초 사이로 다가올 그조차 준비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앞으로의 또 다른 365일을 닳아갈 1월 1일 0시 0분 0이라는 이름의 초. 그 짧은 시간 모든 필름을 감고 새 필름을 꽂아 휠을 감아놓는 것이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사건들에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기억이라는 서랍장속 20여개의 필름들을 난 어느순간부터 현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화한 기억어딘가에 머무른채 그때를 그리워하는건지 원망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심정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지금의 내가 인생이라는 카메라를 이렇게 대하게 만든 그 마지막 필름을 나는 이제그만 태워버려야할지 아니면 그 이후의 필름들을 모조리 현상하여 그 마지막 기억이 저멀리로 사라지게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습게도 나는 절망적으로 떠난해의 셔터를 빠르게 눌러댔고 어느순간부터 미리 새필름을 감아놓고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초 사이에 소중한 이와 돌려볼 지난해의 필름도 자랑하며 선보일 다가올해의 필름도 나누지를 못했다. 진정으로 삶을 산다는 것은 그런것 같다. 시간과 적정선을 지키는 것.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으며 너무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일찍 빼버린 필름엔 빛이 새어들어가 내가 알아볼 기억들이 몇 없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어서 힘들었던것인지 힘들어서 열심히었다 생각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힘들어서 좌절했었는지 좌절해서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절망적일 수록 새해는 반갑다. 예쁜 기억들을 많이 담아보자 새해야. 내 너를 마주하는 매순간 소홀하지 않으마. 항상 준비하고 항상 감사해하고 항상. 더 행복하려 노력하마. 그리하여 우리 다음번 또 그 짧디짧은 순간과 마주할때에 다 돌아간 필름이 되어 만나자. 내 너를 인화하마. 내 너를 가슴에 품고 희망처럼 안아 살아가마.

나는 오늘 새 필름의 첫 셔터를 누른다.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그러나 절대 잊어버려선 안될 오늘을 기록한다.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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