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믐 Jun 17. 2022

57일 차

2022. 06. 18

Q. 인생곡선에 나타난 당신이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요?

아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그때의 사진들을 보면 '사랑 많이 받았구나, 이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석 같은 느낌이랄까요. 자유롭고, 예쁘고, 밝고, 호기심이 가득하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샘 솟아나게 하는 그런 표정과, 얼굴과, 포즈를 취하고 있죠. 그때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죠. 물론 책도 읽고, 퍼즐도 맞추고,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도 했지만요. 문득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Q. 인생곡선에 나타난 당신이 가장 불행한 때는 언제인가요?

인생곡선은 많이 축약되어 있습니다만 한두 번이 아니네요..ㅎ 그래도 가장 불행한 때를 꼽자면 열네 살부터 열아홉까지. 물론 그중에서도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모든 것이 무섭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모든 것이 안전하지 못했죠. 그리고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도, 힘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성인의 나이가 되고부터는 그래도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는 까닭에 아주 작은 숨구멍이라도 뚫어볼 재간이 생겼지만. 내가 이삼십 대에 겪은 일들을 십 대에 겪었더라면 나는 더 힘들어했을지도요. 그 때문인지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죠.


Q. 당신의 인생 곡선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있나요?


Q. 당신의 인생곡선에서 계속되는 긍정적인 패턴은 어떤 것인가요?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의 뜻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어요. '살아있어야만 좋은 날을 만날 수 있다. 살아있어야만 좋은 날을 만들 수 있다.' 뭐 이런 식으로요. 물론 내 영혼이 허락하지 않아서였겠지만, 내가 삶을 정말로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반복되는 불행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번 낙하하는 기분이 드는데 깊이가 다른 거죠. 이만하면 다 떨어졌을 법도 한데,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이가 드는 건 아는 고통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낯선 고통은 배로 무서워지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는 온몸에 힘을 쭉 빼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떨어지거든요. 저 깊은 밑바닥에 도착해야 사람은 쉴 수 있어요. 그러고 나면 또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여정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거기에서 또 새로운 길을 걷는 거죠. 


Q. 당신의 인생곡선에서 계속되는 부정적인 패턴은 어떤 것인가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라는 사람 안에는 그런 동네가 있어요. 사막인데, 모래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딱 하나 있죠. 좀 수용소처럼 엄청 큰 그런 곳이 있어요. 사슬이 뒤엉켜 있는 것처럼 잠긴 두터운 나무 문이 있죠.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이 생긴 문이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인기척도 없는 건물이고, 건물 안에는 빛이 들지 않죠. 건물을 드나드는 존재는 유일무이한데, 에고라는 녀석으로 추측하고 있고요. 하지만 한 번씩 문이 사라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존재가 건물 안으로부터 나와 밖으로 스르륵 사라지죠.

그 안에는 고체화된 아픈 감정들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요. 갇혀있다지만 어딘가에 묶여있거나 행동이 통제당하진 않죠. 그냥 어두컴컴한 방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갑니다. 그들은 밥을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죠. 그냥 하루 종일 매일매일을, 수십 년을 최선을 다해 우울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몸집이 불어요. 어떤 애는 빼빼 말랐기도 하고요, 어떤 애는 자기 방을 뚫고 나갈 만큼 커져있기도 하죠. 한 번씩 그 애들 중 하나가 내보내 달라는 강력한 의사를 표합니다. 그러면 나의 일상에 힘든 일이 생겨요. 
예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내 삶에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것이 그 아이들이 내보내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그 아이들이 있는지도, 그런 건물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감정이라는 것은 본체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기 같은 것이죠. 뭐 그들 나름대로 어떤 냄새나 색을 가지고는 있지만, 내가 잡는다고 잡아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공감해주고 인정해주지 않은 감정들, 우리가 부정적이다 배웠기에, 부정적인 것은 나쁘다 배웠기에, 그렇게 판단해버린 감정들은 이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공기는 단단해지고 형상을 갖추죠. 어떤 감정들은 처음에는 살만한지 크게 문제를 일으키진 않아요. 그들이 문제를 일으킴에도 내가 무시해버리면 그들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더 거대해집니다. 거대할수록 그들이 내보내 달라는 신호는 내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죠. 그것을 하나하나 기화시키는 일도 더 어려워지고요. 

결국 긍정적인 패턴이랑 이어지는 얘기입니다만, 이제는 내가 조금 알은 사람이 되어서, 하나씩 어렵게 어렵게 내보내 주는 작업을 합니다. 가끔 '아니 뭐가 이렇게 많이 갇혀있는 거야'라며 놀랄 때가 있지만, 언젠가는 그 건물이 텅 비고, 더 이상 잠글 문이 필요하지 않은 날도 오겠지요. 그때에는 그 건물을 없앨지, 아니면 뭐 또 다른 용도로 어떤 박물관이라거나, 뭐 그런 걸로 쓰게 될지도요.

이런 걸 누군가는 무의식 정화라고 부를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6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