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공항, 통점

by 그믐

공항은 낯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낯선 곳에서의 첫숨을 기억하는 곳이며 변화의 문턱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감정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의 1년' 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인터넷이 없는 기내에서의 반나절은 흥미로워보인다.

모두가 주어진 같은 시간과, 시간 활용의 제약 속에서 누가 가장 알차게 쓸 줄 아는가 겨루기를 할테지.

그 중 가장 으뜸은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공항까지의 길은 길다. 나는 북동쪽에서 남서로 향한다.

하나의 지하철을 타고 각기 다른 역, 각기 다른 사람들에 섞인다. 누군가의 인생을 보는 듯도 할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갈등을 표명한다면 때때로는 매우 고요하고 평화롭게도 또는 매우 난잡하고 정신이 없을 때도 있겠지.

예쁘게 웃는 사람들처럼 내게 기쁨을 가져다 줄 갈등도 있을 테고, 다수의 무표정이 말해주듯 미해결된 갈등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다만 그가 자리를 떠나고 빈자리에 머물렀던 온기가 식어갈즈음 나는 그 갈등이 나를 왜 찾아온건지 알게되겠지.

간혹 열차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얼굴들도 있을거야. 어쩌면 내 삶도 미치도록 슬픈 일은 '간혹' 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통점이 반응하는 자극과 마주할때 그 끔찍한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통점은 지독한 외로움이나 그리움, 슬픔이나 아픔, 공허함 혹은 상실감에 반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살아가고 행복하고 웃게될 삶 속. 간혹. 그렇게 죽도록 아파도 살아내야 하는 지옥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이 모든 여정을 혼자 준비한 사람답게 그 어떠한 여운도 남아있질 않다.

지난 새벽 답답한 숨통을 트이러 무작정 런던거리를 헤메이며 나는 내가 없는 런던을 보았고 그 거리가 너무 그리워 빗물 섞인 눈물을 흘려 보냈더랬지.

그날 나는 새벽비를 맞으며 지하철을 타는대신 몇정거장 집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걸어보았다 홀로.

아무 생각없이 난 그 공기가 너무 좋아서 걷기시작했는데 걷다보니 내가 참 많이 걸었던 길들만 나타나더라.

새벽녘에 아무런 소음이나 방해없이 혼자 덩그러니 그 공간과 그 기억과 그 시간과 마주하는데, 나는 어떻게 감히 이곳을 잠시라도 떠날 생각을 했을까

비오는 구름, 바람에 부대끼는 나무들 사이로 출근하는 사람들, 오픈 준비를 하는 상점들 사이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나는 참 독하고 강하게 컸다고 믿었는데 한 살 일년을 더 먹어 보낼수록 나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너무 쉽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누군지 모를 누군가에 대한 간절함이 생각이 나더라.

그런데 누군가 오늘 새벽의 나의 한걸음 한걸음을 함께 해주었다면 나는 아프지않았을거야. 울지도. 않았을거야.

그 공간이 신혜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겠지. 바람도 빗줄기도 세찬데 나는 그 거리와 그 기억에 우뚝 멈춰있는것도 못했겠지.

너 왜이렇게 약해빠졌니. 고작 이런거에 그렇게 슬퍼하고 속상해지면 어떡해. 하고 소리내어 말해봐도.

미련스럽게 나는 그 순간의 무감각보단 그 순간의 자극이 좋았다.

내가 독해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세찬 비바람에 덜컥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지하철을 타버린다거나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 공간 그 시간의 의미를 미처 다 알지못하고 지나쳐버린다거나. 나는 이런것들이 더 서글퍼보이는걸 어떡해?

나는 달래줄사람보단,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을까?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의지란 그저 나와 함께해주는것이었을까.

그 외로움이 미치도록 싫었고, 죽도록 이곳이 그리울거란 생각을 한다.

다음 해에 드라마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1년 후' 라는 자막과 함께 이 곳에 도착하게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통점은 자극에 무뎌지거나 반응에 무뎌져 있을수도 있다. 나는 덜 슬퍼하고 드물게 슬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도, 그리움도 어딘가에 중화되고 녹아들고 없어질 것이고 기내에서의 시간을 더 알차게 배우는 법을 알게 되거나 혹은 다른 지하철 노선같은 1년을 살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그 거리를 걷고있을 것이다.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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