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있어야했는데 없었던 첫번째 것

by 그믐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생생히 기억하는 아주 먼 옛날의 한 장면이다.

키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작았던 네살, '샛별 피아노 학원' 이라 적힌 남색에 빨간 테두리가 둘러진 가방을 들고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어느날 엄마한테 그저 갈 곳이 있다고 졸라대며 손을 꼬옥 잡고 신나서는 단지내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으로 데리고 갔단다.

가방이 부러웠던건지 피아노가 가지고 싶었던건지 아니면 상가내 미술학원을 오가며 들려오는 소리가 신기했던건지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학원내 쇼파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엄마는 그런 내가 귀여워서 아무 말없이 학원을 등록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십년이 넘는 세월 피아노를 쳤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휘자나 음악가 뭐 그런거, 피아노를 잘 치게되면 바이올린, 첼로, 플룻을 이어 많은 악기들을 배워나갈 생각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난 회초리로 쓰였던 아빠의 지휘봉을 가지고 4/4 박자를 휘둘러보았다.


중학교를 가게되면서 원치 않은 이사를 해야했다.

피아노는 남의 집 창고 속으로 숨어들었다. 다른 짐들로 옆면조차 보이지 않는 껌껌한 방 안에 나의 카라멜색 피아노가 있었다.

솔직히 그즈음엔 지루하기도 했다. 체르니 50번도 다 끝냈겠다. 이것저것 어려운 악보들을 하루에 몇십번이고 쳐야한다는게 지겨웠다.

개인레슨을 오는 선생님과의 수다가 더 좋았고, 내가 얼마나 좋아해서 십년을 쳤는지는 까맣게 잊은채 이걸 평생 한다니 얼마나 재미가 없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쉬움에 피아노 학원이라도 다녀볼까 했지만 그것은 주변사람의 비웃음에 동화되어 잠식되었고 나는 대한민국 학생 답게 나의 본분에 충실하려면 취미생활이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피아노만 보면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깝다며 쳐보라고 요구했다.

나는 나의 카라멜색 피아노를 그 시커먼 소굴 속에 넣은게 엄마인 것만 같아서 내가 다시 피아노를 치길 바라는 엄마가 미웠다.

싫어서 놓아버린것과 싫어서 놓아버리기전에 타의에 의해 놓쳐버리게되는 것으로 부터 오는 유치였다.

나는 건반에 손을 올려놓기 무서워.

엄마는 그럼 치지마. 라는 단호함으로 미안함을 대신했고, 나는 굳어버린 손가락을 거머쥐고 많이도 울었다.

취미가 없어야하는 한국 학생의 모습에 물들어가고 지금까지 10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단다.

그때도 지금도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많이 좋아하고 간절히 원해서 열심히 했다.

그러다 문득 피아노를 잃어버린 10년이 피아노와 함께한 10년보다 행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10년 전 내가 잃어야했던 소중한 것 중 하나가 피아노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실감은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한다.

상실감이 커지고 커지다 보면 가져도 가진 것 같지가 않고 소유의 무소유에서 오는 괴리감이 괴롭다.

많이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많이 잃어버렸고.

지금도 적게 가진 것은 아니지만, 있어야하는 것들은 전부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나를 미치게했다.

전문가는 말했다.

있어야하는 것들이 있지가 않죠. 있었으면 좋은 것들도 있지가 않네요. 어쩔 수가 없어요. 본인이 할 수 있는게 없으니.

부재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한은 변하지 않을거에요.

그러면 방법은 하나죠, 다른 것들로 그 자리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 시늉이라도 해놓는거죠.

맞는 말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래서 위로였다. 그래서 더 슬펐다.

그래요 시늉 한번. 해봅시다. 하며 뒤도는 꺼림칙함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싫었다. 시늉을 해야한다는 것도 슬퍼죽겠는데, 시늉을 하고있는 동안은 또 얼마나 슬퍼야하는지.

슬프고 싶지 않았다. 슬플. 힘도 없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했다.

내가 곁에 있음을 핑계삼아 피아노 학원에 갈 용기를 내보고 싶어했다.

엄마가 상담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비관적인 표정으로 저는 별로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지가 않아서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책꽂이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몇년전 사두었던 디지털 피아노를 발견한다.

엄마의 미안함의 산물이었고 내가 짜증이 나거나 슬플 때마다 다 굳어버린 손가락이 투박한 소리를 만들어내던 가구 같은 것이었다.

한번도 펼쳐진 적이 없이 영국을 갔다가 고스란히 돌아온 쇼팽의 왈츠책을 꺼내들고 나는 읽혀서가 아닌 기억해서의 방식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쳐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시늉을 덜 해도 되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의 삶 속, 피아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많이 달라졌을까.

나는 덜 외로웠을까.

혼자 슬퍼하는 일을 덜 해도 되었을까.


나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피아노를 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왠지 10년동안 잃어버린채 살았던 것들을 하나 하나씩 찾게될거란 느낌도 함께.


201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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