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의 집 앞을 교묘하게 돌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혹시라도 돌부리에 걸리어 내 생각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놀란 그 일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와 마주치면 어쩌나.
발끝으로 조심조심, '그래, 그런일도 있지' 정도의 겉핥기만 허용하며 지나쳐간다.
만약에 눈이라도 내리는 머릿속 퍼렇게 시린 내 생각이 홀로 추운 길을 걷다가 아픈 너의 따스함이 그리워 그 문을 덜컹 열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또 며칠을 하염없이 울어야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의 표정들을 야속하게 외면하는 방법을 배웠다.
혹시라도 그 얼굴이 너무 시리어 내 감정이 그 볼을 감싸지기라도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듯 샐쭉 웃으며 두 손을 꽁꽁 얼어버리게하면 어쩌나.
곁눈질로만 조심조심, '아니야,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만큼의 합리화를 허용해주며 지나쳐간다.
만약에 눈이라도 내리는 마음속 빨갛게 언 내 맘이 홀로 추운 길을 걷다가 슬픈 너의 미소가 그리워 두 눈을 빤히 쳐다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또 며칠을 온통 슬픔으로 지새워야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기억은 온통 아프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그리워하고 싶지도, 후회하고 싶지도, 원망하고 싶지도 않은 미련한 나는
눈과 귀를 꽁꽁 싸메고 춥디 추운 그 생각의 거리를, 감정의 얼굴 사이를 헤메이고 또 헤메인다.
II.
모퉁이를 돌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을 마주해버렸다.
그것은 슬픈 미소를 띄며 잘 지내냐고 묻는다.
나는 매우 괴로운 표정으로 너도 잘 지냈느냐는 예의를 갖춘다.
그것은 애써 밝은척 들어와 차라도 한잔 하지 않겠느냐 권한다.
마주치고 싶지 않는 것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일은 어렵다.
나는 아마도 그것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옥같은 발걸음으로 그의 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알고싶지않은 그간있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곁눈질 사이로 외면할 수 없는 얼굴을 발견해버렸다.
얼굴은 아파보이지만 따뜻해보인다.
나도 모르게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민을 했다.
그 얼굴이 걱정이되어서, 혹은 지금의 나는 너무 춥기 때문에.
금기된 오지랖을 떨자 따뜻한 그 손이 덥썩 나를 잡는다.
얼굴은 표정을 거두고 울분을 토하기 시작한다.
그는 내 손을 절대 놓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 일그러짐을 끝까지 바라만보아야한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건 듣기 싫은 이야기도, 일그러지는 얼굴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무표정하게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나일 것이다.
그런 일도 있다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너무도 그런 일을, 너무도 상관있는 일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내 자신일 것이다.
201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