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부터 스스로에게 내준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을 네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목록을 짜보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하고싶은 일,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과 그리고 해야하는 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까페에 앉아 가는 해와 오는 해에 대한 무감각의 감흥을 바탕으로 몇자 적어보기 시작했는데
몇십개 빼곡히 채우는 일이 가장 쉬웠던 것은 '해야하는 일' 이었다.
그 다음으로 나는 '하고싶은 일'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먼저 적어본 목록의 반 정도 채워졌으며, 가고싶은 곳이라거나 되고싶은 이상에 대한 욕망이 주류를 이뤘다.
세번째로 적기 쉬웠던 목록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가장 보편적인 몇가지 동사를 적고 나니 항목은 바닥났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일'을 위한 빈 칸에서 나는 오래 망설였다.
한시간이 다되도록 겨우 적어낸 것은 딱 두가지 뿐이었다.
'하고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전자는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성취감이라는 형태의 쾌락을 안겨주는 일이었고
후자는 특정한 행위가 없어도 보편적으로 언제든 해왔고, 또 할 수 있음에서 오는 쉬움에 대한 쾌락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자의 목록에서 너무나 현실가능한 일들만 삐죽대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퍼졌으며
후자의 항목에서 피폐함을 느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이 전해오는 서러움이었다.
좋아하는 일은 하고싶은 일 중 언제든지 쉽게 할 수 있고, 해 온 일로 구성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고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의 커다란 교집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쉽게' 할 수 있었던 일 중 하고싶었던 일도, 좋아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나의 휴식이 목표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었는데,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그 한계에 도달해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의 시작점이나 원인같은 것은 아직 찾아낸 바가 없다.
나는 좋아하는 일의 목록에 좋아하는 일을 만드는 일이라거나 찾아보는 일조차 적어낼 수 없었다.
심지어 거리의 미남미녀를 찾는 일에도 해당사항이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포스트잍을 대량으로 장만하는 일조차도 좋아한다고 까지 말할 수가 없었다.
예쁜 노트를 구입하거나, 서점에서 예기치못한 책과 마주했을 때에도 그것은 좋아한다에 미치지 않는 아주 작은 행복이었다.
나는 별만 쫒다가 꽃을 보지못한채 늙어버린 슬픈 여자애가 되어있었다.
해야되는 일들과의 교집합이 없다는 사실도 매우 슬펐다.
그것은 내가 인생에 얼마나 지쳐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해야되는 일들 중 할 수 없는 일이 없음은 약간의 위로와 안심을 주었지만, 소수의 하기 어려운 일들은 다시 나를 긴장케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던 삶이라지만
가질 것들을 만들기에는 없지 않기 위하여 애쓰다보니 나는 여전히 0이었다.
이 네가지 중 가장 우선 순위에 해당하는 것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명제가 아닐테고,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인 명제였다.
그것이 거짓이 되는 순간 나는 철부지가 되었고, 더 많이 울어야했으며, 외로워야 했다.
그리고 그 집합에 충실해온 난, 텅 빈 나머지 세 집합을 발견한다.
네가지 집합의 교집합이 생기고, 그 교집합이 차지하는 부분이 클수록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질은 높을 것이다.
인생은 단조로워지겠지만 여유가 넘칠 것이고, 행복이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게될 것이다.
한가지 다행인 사실은,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아주 작은 교집합이 생겨났다.
그 두가지 집합관계에는 아주 재미있는 작용이 숨어있는데, 그 둘은 다른 집합보다 훨씬 강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좋아하기가 쉬웠으며
좋아하기에 해보게 되었다.
아마도 그 교집합에 들어선 첫번째 손님은 그곳에 전세를 내고 평생을 살게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하고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교집합은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때때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불안한 미래로 부터 벗어날 탈출구가 될 것이며
해야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교집합은 그 일을 효율적으로, 성공적으로 해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해야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교집합은 세상에 대한 무기이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의 교집합은 모험심을 길러주고 인생의 감초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2013년 스물넷을 살아가게될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하나 내려고 한다.
네가지 집합의 교차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하나여도 두개여도 좋다.
항상 새벽에 깨어있겠다거나 소중한 사람한테 하루 한번 하늘의 기분을 보고해주겠다는 일도 상관없다.
그리고 1년후, 나의 방전된 배터리가 얼마나 충전되어있는지 확인해보고싶다.
얼마나 더 많이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내가 맞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과 함께.
201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