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소통 I

by 그믐

요샌 부쩍 육체적 관계와 정서적 관계의 연관성을 많이 찾는다.

모든 관계의 소통에 있어서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인 때에는 '폭행'이라는 행위에 따른 가,피해자가 생겨나고

일회용적 소통과 장기적이고 진중한 소통에 따라서 책임감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맘 속에 이미 들여놔버렸으면 다른 것이 와서 차낼때까지, 아니면 스스로 나갈때까지 내가 먼저 내보내는 일을 못해. 근데 스스로 잘 안나가.' 는 것을 꺼집어낸 이가 있었다. 미련스럽게 품고 있는 내가 불쌍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굳게 닫힌 문을 부수고 헤집고 들어와서 그를 움켜쥐고 나가버렸다. 그 강제적인 언어의 손짓은 마음과 감정에 심각한 흠집을 냈으며 나는 그것이 성폭행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덜 뜯겨져간 점성 짙은 미련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라고 무너지고 상처입은 마음의 벽들을 회복시키며 온전하지 못한 존재를 여전히 품고 있지만 헤집혀지던 고통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이 행위의 가해자는 나를 표적으로 계획해온 것인지, 아니면 순간의 기분으로 저지른 즉흥적인 일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일회용적 소통으로 정의내리고 싶다. 그는 그의 행위에 대한 그 어떠한 것도 책임질 수 없었다.

단순히 대화만을 나누는 순간에도 원나잇스탠드는 존재한다. 낯선 사람을 마주하며 무언가를 나누는 미필적고의를 행한다. 우리는 그것을 나누기 위하여 만나지도 않았고, 나누는 순간에도 맞는 것을 맞게 나누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단순히 나눈다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론 그것이 생각보다 더한 쾌락을 안겨주기도, 굉장한 찝찝함을 남겨주기도 하는데, 이는 나눔의 첫 단계를 보면 알 수가 있었다. 벗겨지는 옷을 통해 나체가 되는 순간이 있는가하면, 스스로가 훌러덩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낯선 이의 앞에 벌거벗은 몸으로 서있는 경우가 있다. 원나잇스탠드가 성폭행과 다른 이유는 쌍방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일회용적 소통이기 때문이었고, 그럴 때는 차라리 순간이라도 사랑받는 느낌 속에 벌거벗겨지는 것이 더 로맨틱 하지 않은가? 대화를 나누는 긴긴 밤 속, 나는 벗어던지기를 바라는 상대방의 눈빛에 의한 반강제적인 요구에 의하여 저항의 의지도 없이 무기력하게 스스로 나체의 부끄러움을 감당하길 택했다. 너무 많은 개인적인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아무런 이유도 동기도 의도도 없이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화제거리들이 어둠을 거치며 희미한 기억과 가벼움에 대한 후회로 남기 시작할 때 즈음, 관계 역시 다음 스테이지를 두고 선택을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성급하긴 했어도 진중했을 그 대화가, 심장을 뛰게하고 마음이 묵직해지며 책임감이 솟아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성급한걸 알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일회용적 부끄러움이 허탈함을 남기고 행위를 함께한 상대방의 무게는 행위의 가벼움과 함께 날아가버린다. 좋았지도 않았던 밤이었고, 오랜 시간 많은 것을 나눴지만 남은 것이 없는 소통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의 가벼움의 회의를 느끼며 하고 들은 이야기를 잊으려 깊은 잠을 청하고, 잘 들어갔냐는 문자가 찜찜한건 당연지사였다.

쓸데없는 책임감이 강한 나는 행위만을 중시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가급적 그런 나의 책임감이 감당할 수 없을 순간들을 만들지 않는 지혜정도는 터득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육체가 아닌 정서적 외로움 앞에서 나는 때때로 잘못된 선택들을 하지는 않았나 싶다. 순간적인 육체적 소통을 즐기는 이들의 가치관을 규탄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서적인 인스턴트적 소통을 일삼는 철부지들에게는 말하고 싶다. 나의 육체보다 나의 표정과 목소리가 완성한 정서적 나체는 더욱 오래 기억될 것이며, 그것을 눈이 아닌 감정으로 본 인스턴트스탠드에게 수많은 왜곡을 거쳐 기억되고 전해질 것이라고. 낯선 이의 정서적 나체를 보고자 하는 욕구 역시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고, 그의 외로운 감정을 보듬으려 스스로의 감정을 발가벗기는 일 또한 도덕적으로 옳은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떤 관계도 사랑이나 신뢰, 동의와 확신없이 상대방을 나체화 시키거나 스스로가 나체가 되는 일 또한 없어야 할 것 같다.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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