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이 끝나도록 여전한 계절의 추위는 길었다. 나의 꽃은 언제 피어오르려는지, 나의 바람은 언제 따스함의 온도를 실어나르려는지. 동면에서 깨어난 후, 겨울이라기엔 따스하고 봄이라기엔 차가운 날들은 지루하고 길었다. 나는 꽃이 달력을 보고 핀다고 생각했다. 따스함의 희망을 품었다가, 봄빛의 하늘을 꿈꾸었다가도 곧장 식어버리는 살결의 온도를 얼지 않게 붙잡아 주던 것은, 2월부터 준비해온 나뭇가지의 새싹들이었다. 그들은 4월을 맞이하여,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기를 시작했고, 피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꽃들은 지는 모습으로 봄을 알리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을 추위임을 알면서도 나는 혹여나 그가 아주 미련스러워 뒤를 돌아볼까봐 여전히 맘을 졸이고 있다. '춥지 않음'을 동반한 완연한 봄은 며칠간의 반가움을 선사했다. 지겹도록 천천히 오는 봄이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자각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달력을 3월로 넘기는 순간부터 봄을 기다렸는데 꽃들을 나란히 걸으며 봄내음을 맡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을까? 사랑하는 이의 손을 붙잡고 있을때여야 반길 수 있는 것이었을까? 따뜻한 햇살아래 춥지 않은 바람이 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봄, 그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봄의 어떤 것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나의 인생에도 봄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하는 희망을 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진작 인생의 3월이라는 달력을 넘기었고, 하루 하루를 손에 꼽으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삶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이 나의 나이만큼 혹은 나의 어머니의 나이만큼 자라며 제각기 싹 틔울 준비를 하는 것을 발견했었는지도 모른다. 곧장, 꽃샘추위라는 슬픔이나 절망감에 빠져, 눈이 내리는 하늘이나 칼 같은 바람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의 소생을 잊어버렸을지언정. 그것들은 오기로 된 때에 이미 오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아직 꽃이 완전히 피어나 나의 코끝을 간지럽히지 아니하고, 햇살이 춥고 바람이 차가워, 사랑하는 이의 손을 아직 잡지 못하여 이것이 봄임을, 아직 자각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봄일지라도, 나는 그것이 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정도의 임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날이 추워져도 더이상 눈이 오지 않을 것이라거나, 아무리 바람이 차가워도 며칠만 견디어내면 따스해질 것이라거나 하는 확신들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들이 피어올라 나비가 날기 시작하고, 잎들이 파래지는가 하면 바람이 기분이 좋고 옷들이 가벼워지는 소생의 봄이 내게도 찾아올 것이라는 안도를 한다. 소생에 대한 기대는 없던 힘을 자아내고, 완연한 봄은 지친 삶을 위로한다. 가장 아름다운 결실은 삶의 고통스러운 시기를 맞이하기 전에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나누는 가을이기보다, 가장 어려운 때를 넘기고 다시 살아나는 봄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여름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에, 그 때가 얼마나 화려할지, 혹은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곧 봄이 올 것이라는 믿음에 감사한다. 한 사람의 인생 동안 단 한번의 사계절만이 존재한다면, 겨울로 시작하여 가을로 끝날 나의 인생이 벌써부터 아름답다. 때때로 장마가 찾아오거나, 가뭄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다. 그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한 생명은, 가을의 결실을 맺어내고야 만다는 것을. 다만 어린 싹이어서 더 혹독했을 겨울을 버틴 작은 나무의 봄은 그만큼 더 따스하고 길었으면 하는 욕심을 품는다. 커다란 나무가 되어도 누구에게든 그늘을 내줄 겸손함을 잃지 않기로 다짐한다. 풍성한 열매들을 나누며 예쁘게 물들어갈 것이라는 꿈을 꾼다. 나의 삶은 지금 3월 12일쯤이다.
201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