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한국의 이국성]
텅 빈 텍스트 창을 켜 본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한달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풀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이사갈 집을 알아보다 이것이 문득 연애를 시작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을 했고, 봄내음에 문득거리는 그리움과 녹아드는 원망을 지켜보기도 했다. 아직 마음이 다 따뜻해지지 않은 추위 속에서 꽃을 피어낼 준비를 다 마친 나무들의 봉오리를 보았고, 상업과 예술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가져본 순간도 있었으며 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 없는 일에 대한 무기력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날, 차가운 바람 때문에 집에 도착한 피자가 다 식어버려 울었던 날도 있었고 천장이 너무 높아서 감정을 다스릴 수 없던 날도 있었다. 아무도 없어서 속상했고, 아무도 있어서 속상했다.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예쁘다고 생각했고 배워갈게 너무 많아서 무릎이 꺾인 날도 있었다. 자신이 없어서 울었고 힘이 나서 지쳤다. 그래도 부쩍 상쾌한 날이 늘어나고 있는 봄날이었다. 나의 출퇴근 길엔 1분 가량의 한강이 함께 한다. 나는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쪽의 한강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늘 반대편 자리가 비어있어서 고개를 한껏 돌려 다른 승객을 불편하게 하곤 했다. 강이라는 것은 딱히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물이었는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좋아 한강이 나올때면 여지없이 창가에 시선을 두는지 몰랐다. 교량을 보고자 함일까, 반짝임이 일렁이는 물살이 궁금했을까, 와중에 나들이를 나온 새들이 보고싶었던 걸까. 하늘과 강물의 색깔은 채도의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빛바랜 세상의 색이 참 한국같다고 생각했었다. 서울의 한국적인 것 하면, 어딜가나 북적대는 인파와 예쁘지 않은 촌스러움, 어줍잖게 낡아빠진 생활고 등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날 그 한강다리 위에서 나는 카테고리의 이름을 조금 수정했다. 한국적인 것이 아닌, 한국에만 있는 것. 녹이 슬고 낡아 빠진 회색의 건물들과 다닥다닥 붙어 도토리 키재기를 하지만 모두 다 다른 높이를 가지고 있는 달동네 작은 집들, 한글 간판의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글씨체라거나, 어디에나 있는 소나무와 은행나무. 빛바랜 하늘색이 불러 일으키는 가본 적 없는 어떤 순간에 대한 향수와 붉은 가로등이 예쁘게 떨어지는 울룩불룩한 골목 언덕의 밤 장판 같은 것들. 돌담길과 정부해서 만들었다 하면 언제나 촌스러운 색깔의 공공 기물. 아기자기한 가난이었고, 살아볼 수 없는 순간의 낡음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있는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아티스트들이 여타하면 그려대는 벽화도, 정부에서 인심치레로 하는 재개발도 아닌 가치의 보존을 갈망한다.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행복하게 해줄 방법은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에만 있는 그 것들에 낯섬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나는 이제서야 일년전 받은 과제를 풀어갈 해답을 찾은 것 같다.
201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