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택시 안, 술이 재운 단잠에 곱게 빠져있는 일행을 옆에 두고도 고개를 꺾어 눈물을 감추던 밤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배게가 젖어들도록 이유도 모른채 슬픔에 잠겨야했고, 다음날 아침에 걸려온 전화마저 눈물로 반가움을 표했다. 선택의 기로를 만든 내가 원망스러웠을 것이요, 모처럼의 안심을 한단지몽으로 뒤바꾼 알 수 없는 목소리때문이었을 것이요, 필요함이 채워지지 않음이요, 기대보단 바램이 실망보단 서운함으로 다가옴이요, 와중에 내 앞에서 깜빡이던 동그란 눈동자 탓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혼란이 버거웠다. 이것은 수많은 갈등들이 빚어낸 그 어떤 공식도 적용시킬 수가 없는 케이스였다. 판단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만큼, 스스로를 가장 잘 인정하게 되는 순간은 없다.
교통사고처럼 버거움은 나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사고 현장에 뻗어 잠이 들어버렸다. 문득 문득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과부하란 그런 것이었다. 계속해서 일어나야 한다느니, 어딜가야 한다느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느니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뭘 그렇게 해야한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달갑지 않은 알람들이 일어날 수 없는 나를 향해 울려대고 있을때, 또다른 알람이 울렸다.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미 늦어버렸거든.' 이라는. 나는 그제서야 편안해졌다. 내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 피를 흘리며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한들, 편안해졌다.
오후 느즈막히 눈을 떴다. 울려대는 핸드폰과 쓰려오는 속에 마냥 뒹굴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지만, 화창할 날씨를 알 길이 없는 컴컴한 방안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갑자기 며칠 전 헤어 드라이기에게 했던 학대를 생각해내었다. 요를 보송보송하게 하겠노라고 뜨거운 바람을 있는 힘껏 틀어 드라이기를 다리미인냥 이불에 쐬고 있었다. 드라이기는 열을 받았다. 그리고 작동을 멈추었다. 나는 그 아이를 식혀보겠다고 에어컨 앞에서 한참을 들고 서있었다. 드라이기는 다시 제 본분을 찾았다.
나도 제 본분을 찾았다.
분명 무언가 하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은데, 시계 바늘은 나를 비웃으며 째깍였다. 지금이 아니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지나쳐 버린 수많은 지금들의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내가 거머쥔 감사함은 외로움을 동반했고, 결여는 특별함을 불러일으켰다. 남들이 내가 놓친 무언가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했다. 남들이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는 동안, 나는. 나는.
나의 삶은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인생이 말하는 어쩔 수 없음에 점점 덜 동요되는 선택의 기로라는 것만큼, 감사하면서도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신념대로라면, 나는 믿는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이 맞을 것이라는 것을. 그 어떤 선택도 실수이거나, 시행착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다만, 선택을 해야한다는 현실에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선택이 귀찮아서 선택을 하는 행위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인가? 나는 철학적으로 모든 것을 분석해볼 힘도, 감성적으로 갖가지 비유를 댈 여유도 남아있지 않다. 나의 선택의 힘은, 선택하는 순간과 그것을 책임질때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씨였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2013.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