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으로 돌아가는 일은 두렵다.
하지만 하루 하루를 더 보낼 수록 나는 나의 휴학의 가치를, 그리고 그것을 두고 했던 고민과 내어본 용기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해야하는 일에 정신없이 달려온 엄마는 요새, 하기 싫다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 서럽다며 종종 얘기하곤 했다. 나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판단할 새 없이 살아온 그녀의 그런 푸념들이 듣기가 좋았다. 내가 휴학을 택하지 않았으면 엄마는 지금도 아파도 아픈지 모른채, 하기 싫어도 하기 싫은지 모른채 또 다른 한 해를 보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오십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놓쳐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나 흘러가는 순간의 대한 간절함을 말하는게 좋았다. 그녀는 여전히 해야하는 일들을 외면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휴학이 처음으로 의미를 덧입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만하면 됬다고 생각했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해야하는 일에 정신 없이 달려온 나는, 해야할 일만 가득찬 삶, 좋아하는 일 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인. 살아내는데에 급급하여 제 굽은 등하나 펴지를 못하고 쓸모 없는 가지들에 갖가지 고민들을 얹고 살던 스스로를 발견했다. 한국에서의 몇달을 보내며 잔가지를 쳐내고 굽은 기둥을 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있어야 할 곳에 뿌리내린 이유를 실천하는 큰 묘목이 되어가고 있다. 년초에, 교집합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좋아하는 일과, 하고싶은 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하는 일이 교차하는 단 한가지만 찾아도 행복할 거야' 라고 말했던 나는 2월말, 유일하고도 간절하게 원했던 경험을 시작하게되었다. 행복과 성장에 대한 고통들은 마음을 넓히고 교집합을 찾게 해주었다. 나의 휴학이, 그리고 나의 삶이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나는 참. 감사했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나는 나이라는, 직업이라는, 도시라는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나를 담아야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흘려야했던 나도 나였고, 흘려진 나도 나였다. 주으러 돌아간 나도, 줍히어 돌아온 나도 나였다. 학부 첫 학년을 시작하며 나는 날 참 많이 잃어버렸고, 다시 주으러가지 못했다. 어딘가 흘려진 나는 외로워하며, 슬퍼하며 혹은 자유로움에 기뻐하며 제각기 어느 순간들을 살아가다가 나에게로 돌아올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엔 나를 담을 수 있는 나는 한없이 협소했다. 제한된 각박함 때문에 참 많은 이들에게 화를 냈던 것 같다. 그때는 참 어렸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고해도 나는 또 다시 좁아지고 작아질 수 밖에 없겠지만 '덜 어림'의 미덕을 조금은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나를 주워담을 날이 오지 않았는가.
다양하고 수많은 마음과 생각들에게도 각기의 삶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자신과 끊을 수 없는 관계나 공통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제각기 성장해 나가며, 나의 시간과 공간과 그 속을 가득 메우는 공기에 따라 불쑥이 찾아들어와 제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점검받고 떠나간다. 때때로 나는 그것들의 유치함이나 비성숙함에 혀를 내두르며 다른 이에게 동정이나 비난을 사기도 하였고, 가끔은 그들의 깊음이나 넓음에 감동하여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나누기도 했다.
나의 삶 속, 그 어디에도 내가 아닌 것은 없었다. 나의 마음과 생각들이 모두 자란 후에는 시간과, 공간과, 그 속을 가득 메우는 공기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에 맞게 흘리는 일도, 줍는 일도 없이 살아가게 될까. 혹은 그것들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끊임없이 나쁜 것들을 흘리고, 좋은 것들을 줍는 삶을 살게 될까.
나의 친구들과 나는 종종 그때의 협소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한껏 신이난 표정으로, 그때 너는 정말 그랬어. 라며 속내 아닌 속내를 꺼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웃는다. 내가 그 때 잃어버렸던 수많은 좋은 것들이, 어느덧 예쁘게 자라서 내게로 돌아온 지금이 좋아서. 나도, 엄마도, 나의 친구들도 때로의 '쉼'을 통하여 흘리고온 길을 돌아가 도망치지 않은 자신을 주워온다. 그러면 우리는 더 예쁘게 웃는다. 도망치지 않은 소중한 이에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Referable Note) 자걍자걍, 낫는 일, Diagrams of Life
2013.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