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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기

친구여, II

[부제: 탈모]

by 그믐

친구여, 만 스물셋인 자네의 탈모 소식을 들었을 때의 침울함이란 이루다 표현할 수 없었다네.

근 일년전 치료가 아닌 병명을 아는 것 만으로도 호전이 가능했던 일이 있었다네.

사실 경위는 모르겠으나, 나는 초음파 검사 후에 갑상선 물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맘껏 절망할 좋은 핑계거리를 찾은 듯 기뻐했었네.

병원을 나서는 길목에서 나는 나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고하며 괜한 억울함을 원망의 화살로 돌렸던 어리석은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네.

마치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사람마냥 나는 이층까페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보며 찔끔거리고 있었다네.

의사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도 된다며 요즘엔 이십대에도 많이들 그러하다는 말로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안심하고 싶지 않았었네.

큰 일이야 있겠느냐만은 열심히 산 댓가가 고작 이런것이라니 하면서 유치한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네.

마치 안경잡이들이 제 눈이 더 나쁘다며 말다툼을 하는 심리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네.

그렇게 살아야했던 삶을 어느때보다 당당하게 원망할 수 있을 것 같았네.

그렇게 살아낸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포기할 이유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네.

그런 희비의 정점에서 감사함보다 우울함이주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네.

그리고 이틀 후 피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발걸음엔 이상한 기대가 얹어져 있었던 것 같았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모든 것을 그만두고 쉬는게 좋을 것이라는. 삶의 일시정지선고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의사는 말했다네, 혈액검사는 정상수치라며 누구나 스트레스는 받지 않느냐고 지금처럼만 건강하라고 말이네.

울며 나오던 이틀전의 내 모습 위로 겹쳐진 그 날의 나는 전화 넘어로 기쁘게 욕을 해대고 있었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기능항진증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하고 있다네.

내 삶도 그 어떤 쉼이나 포기없이 계속되어가고 있고 시간이 지나며 물혹의 존재는 원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제되지 않을 정도임에 감사하게 되었네.

아마도 자네가 한 움큼씩 쥐어지는 빠진 머리카락에서도 이런 것을 느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네.

자네는 그 안쓰런 사진과 함께 편히 살아뵈는 이들을 탓하는 것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어했었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참 예쁘더라고.

속 시원하게 인생과 마주앉아 침을 튀기며 욕이라도 한바탕 하고나면 나아질까하는 마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알 것만 같았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었네. 그들은 생각과 마음에 탈모와 물혹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네.

하지만 그것은 거울로도 초음파검사로도 혈액검사로도 발견되지 않는다네.

언젠가 그들의 생각이 민둥산이되고 그들의 마음온도가 조절이 어렵거나 작은 감정에도 쉬이 지친다면 그제서야 알겠지,

하지만 어찌 대머리가 된 생각에 머리카락을 심고 부풀어버린 마음의 혹을 쉬이 잘라내겠는가.

그러나 친구여, 자네가 가진 생각의 가락은 풍성하고, 마음의 호르몬은 건강할 것이라네. 그리고 자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와 비교하지 아니하고 꿋꿋히 예쁘게 살아온 사람임을 나는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이라네.

마음의 병도, 생각의 쇠락도 없는 자네의 앞날에 젊음과 건강함이 넘칠 것일세.

우리 너무 겁내지 말게나. 자네나 내가 가진 작은 흠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것이요, 그 안의 아름다움은 쉬이 얻을 수 없는 것일걸세.


201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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