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치기

무제노트 10

[부제: 25.4세]

by 그믐

쇼디치 파이어 스테이션을 지나는데 이태원 소방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뱅크 스테이션의 환승표기를 볼때마다 야채김밥이 떠오르는건 나뿐입니까?


영국은 예술과 상업을 엄격히 구분해 놓은 나라이구나 하는 생각.


도수 10% 미만의 짧은 사색 I

끝나버린 인연만큼이나 오해로 똘똘 뭉친 관계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게 오해라고 생각할 여지도, 그가 가진 오해를 고심해볼 여지도 남아있지를 않다. 오해하고 싶지 않은 진심을 너무도 전하고 싶은, 오해하지 않기 위한 진심이 너무나 궁금한 사람을 지니는 일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진심을 궁금해하는 일. 그런 진심어린 관심을 주고 받는 일의 소중함을 문득 깨닫는 밤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시 시작할 것도 아닌데,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미 오래 묵은 오해들을 풀어봤자 어색함만 가중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년이 지난 그 때의 그 일, 그 때의 그 사람으로부터 해명이나 변명을 듣는다면, 혹은 나의 이유나 핑계거릴 궁금해해준다면 그래서 그것에 대해 편하게 나눠볼 기회가 있다면. 이미 그럴 필요도 가치도 없어진 그 관계에도 따뜻함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설령 번복될 희망이나 바램이 없다하질라도. 케케묵은 미안함을, 고마움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받을 기회가 있다면 조금 훈훈한 기운이 가득찬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고. 감정소모가 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저도 관심이고 불필요한 신경거리가 아니라고 얘기하진 못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 때 널 참 많이 기다렸다고. 그래서 넌 그 때 내게로 돌아오지못했던거라고. 그렇게 미워했던 널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고, 그렇게 아팠던 내 맘이 그리 아파할 필요가 없었던거라고. 그러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는 지금의 각자의 삶이 조금은 더 미소지어질까?


다음의 만남은 작은 꽃 화분 하나를 키우는 것과 같았으면 좋겠다.

언제 꽃 필까 노심초사 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만개에 온 맘을 쏟지 않고

그러다 어느날의 낙화에 상처받지 않는.

그렇게 덤덤하고 소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해가 다시 지나면 그렇게 또 이쁘게 필거라는 믿음이 그 뿌리만큼 든든한.

그렇게 키워가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안정감이란 돌아가고픈 순간을 언제든 재현해 낼 수 있을 때 오는 것인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그 때 그 장소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얘기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클수록 삶은 덜 불안해지고.

그리고 우리는 재현이 아닌 그 사람들과 새로운 돌아가고픈 순간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겠지.

아마도 여기에서의 내 삶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인 것 같다.

아마 헤어짐도 같은 것 같다.

돌아가고픈 만큼 좋았던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과 남남이 된다.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그 사랑이 끝나면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이사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까.


예를 들면 2005년, 왼손을 다쳤다고 하자. 왼손을 못쓰게됬다. 모두가 왼손잡이였다. 나만 오른손잡이었고. 그들은 나의 오른손을 쓸모없다고 여겼다. 나의 오른손은 그들이 왼손으로 하는 일을 똑같이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왼손잡이가 아닌 내가 싫고 못나보였고, 그래서 왼손으로 그들처럼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그 손을 다친 것이다. 그 후 나는 다시 오른손잡이들의 세계로 돌아와 왼손을 쓸 필요가 더이상 없게되었다. 왼손을 못 쓴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도 없이 살다가. 우연찮은 기회로 나는 다시 덩그러니 왼손잡이들에게 둘러쌓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서툴어도 왼손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 산더미이다. 나는 새삼. 그 사고를. 그 흉터를. 기억해내게되고 그래서 마음이 저리고. 조금이라도 움직여보려고 어떻게하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지 아는데도.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왼손을 다시 쓰게할 기회이고 동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재활치료가 어마어마하게 아프리란 것도 안다.

그리고 나는 왼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기도 하다. 쓰고 싶지 않다. 쓰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 사고도 알고싶지 않다. 그냥 다 싫은 것이다. 오른손만으로도 인정받고 존중받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다. 그러나 나는 도망칠 수 없다. 이것은 배울 수 있는, 바꿀 수 있는,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행복도 돈도 모든게 모으면서 쓰고 쓰면서 모을 줄 알아야 한다.

더 큰 것을 위해 당장의 것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하지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을 기다리느니 지금의 것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바다색은 하늘에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저. 저를 마주하고 있는 녀석을 아름답게 비출 뿐이다.

혹은 하늘이 바다를 비추는 걸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또 다시 이별할 자신이 있을 때 하는 것인 것 같다. 이별로 아파할만큼 사랑해도 좋을 용기로 사랑하는 것인 것 같다.


살면서 서로 재화나 서비스를 주고 받는 일이 생긴다. 꼭 돈이라는 가치단위가 아니더라도,

제각기의 관념에 따른 가치단위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만큼 심장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르는 에너지로 가득차는 때는 없는 것 같다.


나뭇잎에 하늘이 묻어난다는 얘기는 긴 여운이 남았다.


2014.05.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친구여,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