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7월 25일 오전 11시 템즈강 앞에서

by 그믐

내 마음의 말을 들을 여유 한 번 갖기가 너무 어려웠던 한 주의 끝에서 나는 실장님의 문자를 늦게 보았고 늦게 본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아마도, 그 문자를 일찍 받았더라면 나는 지금과 같을 시간에 꿈나라를 헤매고 있겠지. 감사한 일이었다. 작은 탄산수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갈까하다, 강을 끼고 담배나 한 대 태우자며 발걸음을 옮긴 곳엔 작고 예쁜 까페가 있었고, 나는 커피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시는 것 같은 정신이 반쯤 다른 곳에 팔린 것 같은 할아버지가 타주는 2000원짜리 커피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다. 왠지, 이 귀여운 할아버지와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갤러리를 샅샅히 둘러보지 않았지만, 그 곳은 의도되지 않은, 그저 익숙해서 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것 같은 모든 크고 작은 요소들이 너무 예쁜. 그런 곳이었다. 나는, 먹어도 될지 조금 의심이 가는 필터커피를 종이컵에 받아들고 다시 강가에 있는 벤치로 돌아와 앉았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써내려가며 천천히 즐기고 싶었던 커피는 의문스러운 맛 탓인지 단숨에 비워졌고 나는 음악을 들을까하다 바닷소리를 내는 템즈강의 소리만 듣기로 했다. 가방을 한 참 뒤적여 펜을 찾은 나는, '그래, 노트와 펜을 안가지고 다니면 김신혜가 아니지,' 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에 젖어들었고, 다리 하나 위에 걸친 노트의 흔들림으로 삐뚤빼뚤하게 써내려가는 이 글씨마저 너무 맘에 드는 순간이었다. 너무 예쁜게 많은 동네여서 내가 보는 것은 죄다 자꾸 남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곳이다. 나는 브루넬 뮤지엄의 할아버지가 내가 첫번째로, 잃어버린 순간을 찾아주게될 사람이라고 예감했다. 이런 눈물나게 멋진 여유앞에서 나는 숨을 쉰다. 모르고 살았더라면 거짓말이고, 찾기 힘들었다면 핑계일테다. 나는 비알레띠와 텀블러를 사서 매일 아침 탄 커피에 이곳에서 삼십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겨울이 되면, 아니 겨울이 되기 전에.. 많은 생각들을 바쁜 시간 속에 흘려보냈다. 내일 아침에도 또 와야지, 그 생각들은 휴대폰 메모장 어딘가에, 친구와의 카톡이나 최근에 만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겠지. 내 모닝페이지를 힐끔보고서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챈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남자는 간단한 한국말을 알고 있었는데 '안녕하세요'라고 서툴게 말하더니, 내가 찍어준 자신의 사진을 꽤 좋아했다. 그리곤 우리는 어색하게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가 있다가, 그 남자는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는 그가 그냥 가버리지 않음에 대하여 착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신의 은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행복을 느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들었다. 나는 자주 내게 점검의 차원에서 질문 몇가지를 하곤 하는데 하나는 '너 잘 하고 있니?'와 '너 행복하니?'라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질문을 엮어주는 같은 맥락이라는 것은 두 가지 모두 가시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과 더불어 지치고 힘든 현실 속에서의 한줄기 희망과 같은 예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절망적일 법도 한 순간에서도 저 두가지 질문에 'yes' 라는 대답을 하기위해 매사에 노력하며 살고 있고 내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한 나는 절망적인 순간도 헤쳐나갈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행복해도 우울할 수 있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한다. 우울할 수도 있고 화가날 수도 있고 많은게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하면 된 것이다. 행복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주 작은 행복의 불씨라도 꺼지지않았다면 누구든 그 행복을 커다랗게 번지게할 수 있다. 신의 은혜도 같은 것이었다. 감사할 것보단 불평스러운게 많은 상황일지라도 감사할 것을 찾다보면 난 은혜받는 사람이었고 내가 은혜받고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많은 것들이 감사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얘기한다. 일년전 크리에이티브 코칭 마지막날 잘 기억은 나지않지만 무언갈 적어야하는 곳에 나는 '잘 살기' 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정말로 놀랍게도 너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오늘만큼 행복하기 위한 나의 선택을 지킬 것이다.


P.S. 점심을 먹으러 일어서는 길에 비둘기 한 쌍을 보았다. 한마리가 쪼그려 앉아있고 다른 한마리를 부리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아무일 도 없었다는 듯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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