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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기

친구여, III

[부제: 파리일지]

by 그믐

친구여, 아침 7시 차를 타기위해 걷는 텅 빈 런던의 튜브역은 미묘한 사색에 잠기게 했다네. 나에게 사소한 실수로 시작된 첫 여행은 감격이었으니까, 나는 그 감격을 텅 빈 커다란 공간 곳곳에 채워넣었다네. 캐리어를 끌고 힘차게 걸으며 자네를 만나기까지 어쨌든 혼자서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하게될터이니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사랑은 여행과 같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랑을 하게될까 궁금해지는 시작이었다네. '드디어'라는 감격으로 시작되는 사랑일테고, 짧은 순간 많은 것을 느끼며 빠져들 사랑일테고, 많은 여운과 함께 뒤돌아서야할 사랑일테였네. 내가 3박 4일동안 하게될 '파리'라는 사랑의 시작은 그러했다네. 읽을 줄도 모르고 이해할 수도 없는 알파벳들이 즐비한 파리에 첫 발을 내디디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안내 방송의 언어는 가히 아름다웠다네. 나는 다른 것보다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사랑을 말하는 언어가 너무 좋았다네. 나는 자네에게 귀찮으리만큼 저건 무슨 뜻이냐, 저건 어떻게 읽냐며, 수줍게 그 말을 따라해도 보았더랬지. 최근에 새삼 느낀 사실이지만 나는 수줍음이 참 많은 사람이라네. 가벼운 인사말 정도 혼자 몇번을 연습해보아도 어줍잖음에 쑥스러워 그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말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네.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없이 그저 떠난다는 것이 너무 좋아 시작된 이번 사랑은, 자네에게 모든 것들을 의지하며 완성되었다네. 나는 사실 온전히 매순간에 매료되지는 못했었다네, 지새운 밤에, 몰려드는 피로에, 풀리지 않는 긴장감에 나는 머리로 이곳이 나의 곳과 무엇이 다른지, 틀린 그림 찾기 하는데에 여념이없었네. 그리고 그 첫째날로 자네와 나의 재회는 충분했었네. 잊을 수 없는 첫번째 순간으로는, 자네와 센느강가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이러저러한 모르던 이야기들을 나누던 그 때. 그걸로 모르던 시간의 서러움에 대한 위로는 충분했었네. 쉬러온 여행인만큼 우리는 충분히 자고 충분히 먹었더랬지. 나는 자네의 부엌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당의 테이블이 너무 맘에 들었다네. 그곳에서 햇볕을 쬐며 홀짝거리던 차와, 분홍색 낡은 자전거, 에메랄드 색의 아무도 쓰지않는 양동이는 그 순간의 시간을 완성해주었을 것이네. 몽마르뜨에서 달리 갤러리를 찾으러 헤메며 나의 마음은 분명하게 불편해졌다네. 그 곳이 좋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기에 살고 싶은거냐고,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럴려면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하느냐고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야했기 때문이네. 둘째날 우리는 통과의례처럼 2년전 런던에서와 같은 놀이기구를 탔다네. 나는 그것이 두번째로 완벽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할 것이네. 어둠이 시작된 튈르리 광장의 바람이 좋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에펠탑과 루브르의 야경이 아름다웠네. 재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있고 싶은 대로 있으면 되는 그런 여유가. 어느 순간에서부터엔가, 쉼의 순간에 와서야 과거의 고생을 알아차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네. 고생이 고생인지 모르고 사는 어른은 예전처럼 징징대고 원망하진 않지만, 자신에게 달콤한 초콜렛을 건네지도 않는다네. 우연찮게 소중한 것을 마주했을 때, 우연찮게 맛있는 것을 먹게 되었을 때, 우연찮게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그런 우연만이 어른이 된 나에게의 선물이 되어있었네. 어쩌면 그 우연은 계획된 보상인지도 모르네, 하지만 그 계획을 모르고 살아온 삭막한 어른은, 남아있는 유치함을 꺼내어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감동할 수 있었다네. 그렇게 삼일째가 되는 날, 나는 이 곳보다는 이 곳에서의 자네의 삶이 부러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네. 모르겠다네. 나는 그저 여기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4일간의 사랑으로, 그렇게 존재했던 사람이기에, 자네의 이곳과의 애증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사랑은, 삶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자네뿐 아니라 이 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와 빠지는 각기 다른 사랑은 어떠한 것인지. 나는 감히 가늠조차 해서도 안되었지만, 나는 그 곳이 참 편안했다네. 내 집처럼 마음이 놓였다네. 뭐랄까. 나의 곳은 모두가 치열한 것 같았네. 즐기기 위한 삶의 요소에 많은 것들이 빠져있는 채, 즐기며 혹은 즐기는 척 하며 사는 삶 같았네. 나는 자네가 손빨래를 해서 베란다에 말려놓는 방식도 좋았고, 이것저것 있는 것들을 꺼내 새로운 요리들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았네. 홀로 집에서도 차를 즐길 줄 아는 것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고, 어쩌면 이 곳은 혼자서도 즐거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우리를 보고 웃으며 반겨주는 현지인들이 따뜻했고, 자네의 프랑스어를 예뻐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네. 나는 나의 곳에서 항상 이방인 같았는데, 자네 옆에서 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더이상의 이방인이 아닌 것만 같았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내뱉어볼 수 있는 말도 하나 없는 그 곳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이 지금도 참 신기하다네. 어딜가나 비슷한 도시 사거리와, 어딜가나 비슷한 골목골목들이었지만 그 비슷함이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이어서 행복했네. 나는 끊임없이 이름도 모를 지하철 역에 내리고 이름 모를 동네를 쫑알거리며 자네를 따라다녔지. 아마도 이번 사랑은, 사랑을 할 만한 용기가 없는 사랑이었네. 그래도 행복했다네. 비오는 파리를 보았고, 나는 바랬던 것처럼 예쁜 우산을 만날 수 있었다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고를 시간이 있었고, 마지막 밤을 위해 꽤고급 와인과, 꽤고급 치즈를 고르고, 자네의 꽤고급 크림 파스타를 맛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네. 나는 자네의 그 곳에서의 삶을 내심 축복했다네. 나의 단편적인 관찰이 경솔하지 않기를 바라네. 솔직히 순간순간 런던이 그리운 적도 있었네. 어디를 가도 내가 아는 말, 내가 할 수 있는 말, 이제는 척척 아는 곳도 많고 나의 할 일이 있고, 내가 속해있는 곳이 있는 나의 곳이 그립기도 했었네. 이 넘쳐나는 여유를 나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맘 한켠 불안함을 지니고 있었다네. 아마도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 이번 사랑이 용기 없이 시작된 것이어서 일거라고 생각하네. 마지막날,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최대한의 신경거리들이 신경쓰임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자네의 집이, 내가 파리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떠나기 전까지 거기에서 머물렀으면 했다네. 내가 열심히 닦아서 쓰이기 시작한 정원의 테이블에서 마지막 차를 마시고, 자네가 해주는 마지막 점심을 먹고, 그렇게 나는 가는 길 배웅 나온 자네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섰네. 2년전 자네가 나의 곳에 왔을 때, 우리는 모두 울먹거렸었는데, 나는 희망차게 1년 후의 한국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고마움과 따뜻함을 한가득 안고서 헤어졌네. 밀려드는 여행에 피로에 나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온전히 깨어있지 못했었네. 순간순간 기록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은 파리와의 짧은 사랑을, 나는 머릿속에 마음속에만 담아둔 채. 자네에게 몇마디 건넨 것으로 만족한 채, 그렇게 나의 곳으로 돌아왔고. 나는 익숙함과 동시에 밀려드는 차가움과 외로움에 울음을 터뜨려버렸다네. 내가 찍어온 자네의 곳과 나의 곳에서의 사진만 보아도, 나는 내내 그렇게 생각했었네. 나의 곳은 시원한 느낌, 자네의 곳은 따뜻한 느낌. 나는 그런 런던을 좋아하지만, 여기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곳이구나 하고. 이번 사랑에서 나는 내 감정을 모르려고 애썼네. 내 감정에게 자꾸 말을 걸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낼 것만 같아 무서웠네. 이 글은 그렇게 침착하게 입 막은 내 감정을 달래고, 머리로 스며든 깨달음을 얘기하는 것이네. 나에게 이 곳은, 이유없는 미움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 그래서 언제어디서 어떻게 치일지 모르는 그 미움에 한없이 작아지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곳. 그래서 혼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곳. 둘이 있으면 그런 미움에 치여도 좀 더 수월하게 좀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털어낼 수 있으니까. 나에게 그랬던 곳. 하지만 그래도 내가 참 좋아하는 곳. 시도 때도 없는 미움만큼이나 살아간다는 보람을 주는 곳. 나는 좀 더 방문객처럼, 좀 더 현지인처럼 이곳을 좋아해보기로 했네. 미움에 무뎌져보기로 했네. 그리고 자네처럼, 사람답게 예쁘게 살기 위한 신경거리에게 최대한 많은 신경을 주면서 살 여유를 키워나가야겠다고. 그리고 그 아름다운 자네 곳의 언어를 배워보기로, 그래서 내가 런던과 결혼생활같이 지겨운 사랑을 하다, 사랑만으로도 어려운 순간에, 그렇게 잠시 쉬러 다녀오기로. 새로운 꿈을 꾸어보기로 했다네. 3박 4일, 2014년 여름 파리와의 사랑은 나의 삶의 한 중턱에서는 어른이 되어서 슬픈, 하지만 덜 어른이어서 감사한 것을 알게 해주었고, 곧 그 곳을 떠날 자네가 없을 파리와의 재회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임에 아쉽고, 그만큼 더 설렐지도 모르는 여운을 주었고,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날 수록 내게 더 진하게 베어들 기억이 될 걸세. 덤덤한 시작과 끝이었고, 절제된 감정은 영원히 조금씩 기억의 순간에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네. 그리고 새삼, 내가 다시 파리를 찾아도 이번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겠지만, 자네와 내가 친구인한 우리들만의 새로운 순간들은 무한히 만들 수 있을 것이기에 감사하며. 안녕, 파리. 안녕, 우리들의 여름.


201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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