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입덧]
갑자기 가을이 왔다. 이래서는 반년주기로 사계절이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7월 8월에 오는 겨울은 뭔가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겨울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은 1과 2라는 숫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래서 그 숫자가 더 시리게 느껴지거나.
어느새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은 오래된 사람들이되었다.
다시 차가운 사람들 가운데에 놓였다. 아무도 서로를 도우려하지않고 아무도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않는다. 실도 득도 오갈 것이 없는 바람만도 못한 관계들이 난무한다. 나의 올해 상반기는 도와줄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참 따뜻했는데...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맘이 서운하다.
나는 정말 하루라도 고민거리없이는 못사는 인간이구나.
맘이 불편한 것은 언제나 하면 되는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둘다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난 공통점을 들이대며 말했다. 우리네 삶이 이만큼 힘들거란걸 간호사가 엉덩이를 때리기전까지 알고 있어서야 라고.
어떤 나무는 바람에 가지를 부딪히며 빗소리를 낸다.
어렸을 때 단감을 먹고 크게 체를 하여 응급실에 간적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수년간 단감이라면 질색을 하며 도망치곤했다. 한 번 체를 하면 링게를 맞지 않고서는 낫지 않는 체질이었다. 한 주를 꼬박 죽만 먹어야하는, 있는 지방 없는 지방 다 떼어 오키로 쯤은 덜어내어야 낫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마음의 체와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체했다. 나는 나를 체하게 한 그것을 당분간 멀리하려할 것이며 그 뿐만아니라 내 맘에 자극을 줄만한 것들도 함께 멀리해야한다. 땡겨도 배고파도 어쩔 수가 없다. 링게도 응급실도 없는 마음의 체는 시간과 거리감만이 약이다. 마음지방을 한 오키로쯤 덜어내면 그때쯤엔 낫겠지...
우리 엄마는 팔개월을 입덧에 시달리며 만삭때도 45kg의 기록을 세웠단다. 다른 가족들은 '도대체 어떤 자식이 나오려고 이렇게 애를 먹이나' 안쓰러운 궁금증 더했고 정상체중이었던 나의 탄생에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이십오년된 내 인생에게도 이따금씩 같은 말을 해주곤 한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될려고 이렇게 애를 먹이나..' 이 말이 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 나는 나라는 인생을 베고 입덧 중인 것 같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만 같은 두려움.
아팠다. 맘의 병인지 몸의 병인지 모르게 나는 침대에 콕 처박혀 일어나질 못했다. 가장 슬픈 것은 편하게 부르고픈 누군가도 없거니와 집에 쌀이 다 떨어졌다는 것인데. 집근처에 어디에서도 한국쌀다운 쌀이나 죽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게 얼마나 서러운 두려움이었는지. 찬장에 쌀이 떨어졌을 때 나는 한국인으로서 가장 크게 외로워진다.
외로움에 찌든 피클들.
밤 열시가 넘어 해가지고 새벽 세시부터 밝아지는 이 일상에서, 나는 항상 하루 중 어둠 속에 내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망각한 채 낮을 즐기기만하는 오류를 매일같이 범하고 있다.
201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