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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기

U-turn

by 그믐

오래도록 마음이 쓰이던 불분명하던 형체가 윤곽을 드러내는 것만 같은 해질녘이었다. 초심이라는 단어가 새삼 무겁게 나를 짓누른지가 오래도 지났지만, 원인이나 해결책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날들이 있었다. 가까스로 당장을 선택하며 살았고 안개낀 앞날에 사정거리같은 내일만 알며 살기로 했다. 때때로는 보이는 것마저 모르려 마음을 때렸고, 모르는 것마저 모르려 숨을 막았다. 모처럼의 여유가 어색해진 나의 오늘은 초침같은 불안함 속에 잠식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려 애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워지던 마음에 봄바람 냄새가 났다. 덤덤하니 반가운 손님이었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러면서 초심도 꿈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우리는 ‘온 길’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어디를 향하던 중인지를 잊었다면, 어디에서 시작한지를 잊었다면. - 그저 같은 도로 위의 차들과 엎치락 뒤치락 속도 경쟁이나 하고 있거나, 예상치 못한 다른 길로 빠지게 되었거나, 사고의 당사자가 되거나, 누군가의 사고로 정체를 겪고 있거나. - 그렇게 저렇게 도로 위의 수만가지 사정에 더 이상의 주행이 어려워졌다면.

그 수많은 차를 뚫고 고속도로를 벗어나야하는 용기와 의지를. 가져야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 멀고 더 험난하고 더 낯설고 더. 외롭다. 함께해오던 차들을, 익숙했던 길을 뒤로하고 역주행처럼 모르는 동네를, 골목을 굽이굽이 살펴 길을 잃고 물어가며,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그 넓다란 대도로에서의 자부심따위 꾹꾹 눌러 담으며 처음이라는 새 출발지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서야. 가장 많이 배운다. 사람 사는 마을을 거쳐 가로수도, 호숫가도 거쳐, 강을 건너고 개울을 건너고 좁은 도로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아. 하고. 생각해 낸다. 나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그걸 알게되면 그 외롭던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이미 ‘남들’이라는 욕심은 내려놓은지 오래요. 누군가에겐 부러울지 모르던 일방통행 대도로는 그저 추억이 된다.

내가 자신하는건. 나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는 지선도로나 타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도로도 한번 타본 적이 있는 내 자신이다.

언제쯤 도착하게될까, 내가 출발했던 곳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내가 돌아가려는 곳은.

다시 출발하는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이왕이면, 저 늘푸른 광활한 언덕 위 꽃이 넘실대고 실바람이 일렁이는 인적 드문 따뜻한 곳이면 좋으리. 나같은 사람 몇. 속도에 미워지는 일 없이 그리 나란하고 평안한 곳이면 좋으리. 돌아오는 길도 떠나는 길도 한 길 뿐인, 그러나 그 한 길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감사히 오갈 수 있는 곳이면 좋으리.

그렇게 내 마음에 새로운 꿈을 불어 넣는다.

나는. 돌아가는 중이다. 다시 출발하기 위하여.

더. 행복하기 위하여.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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