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어 지층을 이룬다. 언젠가 그것들을 뚝 잘라 단면을 내어보면 내 연대기, 그 순간의 화석들이 발견되려나. 아니 생각의 지층은 부식이 빠르다. 그것들은 서로를 뜯어먹고 엉겨붙으며 뭉뚱그려져 알아볼 수 없는 먼지뭉치가 되어버릴테다. 그것들이 온전한 형태를 잃어버리기전에 그 단면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게으른 최소한의 노력이렸다. 최근 베를린을 여행했다. 첫 솔로트립이었고, 내내 비가왔으며 호텔방은 작고 따뜻했다. 나는 그 긴 여운에 사로잡혀 한주를 의식처럼 바치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보다는 봄이 오기 직전이나 겨울의 시작 단계에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이 참모습을 마주하기 좋은 방편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내 우비를 쓰고 그 수많은 소나기의 마침표들과 바람의 정 가운데에 머물렀다. 내가 이토록 아무 말 없이 며칠을 보낼 수 있는 인간이었던가, 무엇이 대화의 부족이 만들어내는 우울함을 떨쳐버리게 했는가 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가장 베를린스러운 베를린에서의 아쉬운 4일을 보내었다. 바우하우스와 바로크가 어우러진 그 소름끼치는 역사의 보존 한 가운데에서 가슴이 뛰었고, 나는 내내 취해있었다. 또 하나의 취향을 만들고 돌아왔다.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켜 줄 작은 퍼즐을 한 조각 찾은 느낌이었는데 나는 아주 크게 감사했다. 혼자하는 여행은 유익하다. 동행자에 관심거리에 혹한 척 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며 식당에서 필요이상으로 다리를 쉬게할 필요가없었다. 언제나 계획의 수정이 용이했으며 나는 그 모르는 곳들을 알필요없이 헤메이는 일에서 여유를 찾았다. 도시로의 여행은 삶의 도시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깨우쳐준다. 다른 것은 별로 없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널려있다는 것 외에는 그러나 나는 그것을 타자로 쳐 넣을 수 있었고 똑똑한 인터넷은 언제나 내게 가장 빠른 지름길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난 세개의 전시를 보았고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전에서 전율을 느꼈으며 발길을 잡아끄는 골목이 없는 대신에 공원에서 길을 잃어보았다.
나에게 여행은 길을 잃는 것이다. 한없이 발길이끄는대로 움직이는 것 그러다 언젠가 돌아가야싶을땐 지도의 도움을 받거나 기억해둔 온길을 되돌아가면 되었다. 프랑스와 리스본과는 다르게 베를린은 시가지에서 헤메이고픈 골목을 찾지 못했다. 내 발걸음은 창을 커다랗게 보기보다는 이리저리 뒤섞인 건물들을 한가득 보는데 더 관심있어 보였다. 파리와 베를린 그리고 런던을 비교하게된다.
내가 스위스를 가기 싫어했던 이유는 사진으로만 보던 도시 특유의 느낌이 적막해서였다. 나는 그 적막 속 외로움에 홀로 놓여 아무렇지 않게 기쁘기만 할 자신이 없었다. 여행을 하면 자연스레 다음 여행지를 알게된다고 말한적이 있다. 나는 베를린 여행을 마치고 스위스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겠다.
베를린 여행을 하고 나는 또 하나의 외로움을 이겨냈던 것이다.
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