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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치기

석양

by 그믐

런던은 아직은 미완성인 나를 아주 많이 완성시켜주었다.

이번에 잡지를 내면서 함께 만든 사운드트랙은 오늘의 밤산책을 적재적소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참 내가 만든거지만, 나한테는 참 좋지 아니할 수 없는 노래들.

오랫만에 나이트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런던에서의 수많은 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

각기 다른 곳에 살때 각기 다른 버스를 타고 각기 다른 곳을 지나며 보았던 각기 다른 풍경들과 그때그때의 각기 다른 노래들.

나에게 런던은 감히 정리할 수 있는 곳일까? 아니.


누군가는 이곳과의 이별을 앞두고 안녕을 고한다지만, 그러기에 나에겐 여긴 또 다른 집이었다.

영국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40% 쯤은 영국사람이 된 느낌이었고,

영국의 희비가 갈릴 때마다 나는 그 감정에 충분히 빠져들고도 남았다.

나와살면서 내가 늘 하게된 말 중에 하나, ‘떠날 듯이 머무르고, 머무를 듯 떠나자.’

내가 이 곳을 떠날듯이 매 순간 소중히 감사히 여기며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언제든 더 머무를 듯이 이곳을 떠날 곳이고.

그런 떠남을 뒤로하고 언제든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거처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감히 함부로 그곳에서의 삶이 단연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확신이 무효가 되는 그 날, 나는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런던을 추억할 수 있기에 행복할 것이며, 그것을 추억해야만 하기에 더 행복할 테다.

그러나 더이상 추억이 감사하지 않은 그 날에 나는 다시 여길 찾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건 항상 그렇다. 절대 그 날의 행복을 오늘 여기로 가져올 수 없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의 어딘가로 데려갈 수 없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언제나. 행복했던 것이기에 그리워할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기에 오늘의 내가 행복한 것일테다.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 앞에서 나는 무너진다. 그 혼잡해보이던 스카이라인을 온전히 드러낼 때에 마음이 운다.

모든 중간들이 모습을 감추고 오로지 끝과 끝만이 만나는 그 순간. 어쩌면 내가 지금 딱 그 곳에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죽기아니면 살기로 했을지 모를 고생들도 그 자취를 감추고, 가장 아름다운 어떠한 사이에서.

나는 끝이라는 끝과, 시작이라는 끝의 맞닿음. 그 사이에 존재한다.


어쩌면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인생의 한자락이 석양과도 같을까. 그리 아름답고 그리 여며지는 감동이 존재하는 곳일까.

나는 너무도 울지 못했고, 너무나 울어야한다.

그래야 이 순간이 완성되리라.


지나간 모든 것들에 손닿을 수 없음이 가슴이 아파 나는 그것보단 지금이 더 나은 것이노라 세뇌시켰다.

그러나 이 석양같은 여유앞에서 나는 감히 말한다. 나는 그것들이 감사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시간이던, 사건이던, 감정이던.

내 곁에 있어주어서. 참 고마웠다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양한 이별을 경험하는 일이다. 의연한 척하지만 마음으로 눈물을 삼킬 줄 알게되는 일이다.

정말 소중한 사람 앞에서만 술잔에 못다한 말들을 다 담아 삼켜버릴 수 있게되는 일이다.

석양이 끝과 끝의 사이라면, 어쩌면 밤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나는 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한없이. 또 한없이. 이 석양이 영원하기만을 바라는 오늘이다.


201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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