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목욕탕에서 온 몸의 묵은 떼를 끝까지 다 씻고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이렇게라도 와서 목욕을 하고 간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다.
남은 떼 쯤은,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십번 되뇌이고 고쳐진 그 오래묵은 말들을 다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말들을 그저 전하고 있음에 그걸로 된 것이다.
못다한 말들 쯤은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질지 너그러이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소한 통증에 대수롭지 않아지는 것이다.
가벼운 감기나 결림이나 일시적 두통은 그저 잠시의 가벼운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못 느낀다해서 무뎌진다해서 그게 괜찮은건 아닌데.
참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일을.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두가 겪는 고통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이다.
우리는 청춘이다. 청춘이 언제까지가 청춘인지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회적 통념 상으로는 그것은 아마도 20대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20대를 2.4년 남겨놓은 지금까지는, 아름다운 청춘 이런거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나는 아름답기보단 불쌍했고, 열정적이기 보단 힘들었다.
불쌍한 나는 아름다운 적이 없다. 힘든 나는, 열정적인 것이 아니다.
글쎄, 청춘이란건 아마도. 청춘이 바로 막 지나가자마자. 그 즈음이 되서야, 그 기한을 알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내가 용기를 잃지않는 동안 그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전하는 동안,
내가 스무살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지를, 그때의 꿈이 무엇이였는지를 잊지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오래전 10대의 나에게 to부정사와 동명사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살면서 해 온 일이 더 많아 아니면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아?”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은 우리들에게 미래의 일을 이야기할 때는 단어도 두 단어나 되는 to부정사를 써야한다고 했다.
내 청춘이 다 끝나고, 쉰이 넘어서 이제는 해야할 일보다 해온 일이 더 많아지면
나는 고집스럽게, 문법에 맞든 안맞든 상관없이. 내가 해 온 일이 더 많기에 to부정사를 쓰겠다고 꼰대처럼 말할 것이라 다짐한다.
어른이 참 많이 되었다.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