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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r 16. 2020

부고 일지 1일 차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한다.

방역을 해야 하니 서둘러 집에 가란다.


오후 8시 15분, 우리 팀은 모두 가방을 싸매 든다.

코로나는 브랜드 업계에도 심각한 사안이다.

소비자들은 발길을 끊었고, 온라인 시장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브랜드들은 우리를 급하게 찾는다.

지난주는 70시간, 그 전 주는 60시간은 일한 것만 같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다.


일반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공포의 대상이고, 이 시국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의료진이라면

브랜드 업계에는 의료진을 대신하여 우리가 있다.

우리는 코로나를 과로나라고 부르며 웃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짜글이를 짜글짜글.

누적된 피로를 웃음으로 비워낸다.

참 좋은 사람들.


내일은 출근을 하지 말라는 회사의 방침에, 나는 웃는다.

나는. 집을 좋아한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

우편함에는 A3 사이즈의 서류 봉투가 세로로 반이 접히어 꽂혀있다.

나는 작년 9월 16일 이후로 A3 서류 봉투를 무서워한다.

등기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내게 등기는, 코로나를 확진받는 것만 같은 일이다.

내게 A3 서류봉투는 코로나 진단을 위해 지정병원에 가는 것만 같은 일이다.


대게 그런 서류 안에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살면서 닿을 일조차 없다고 여겼던 기관들이 갖가지 처음 보는 문서들로 이상한 소식들을 전해준다.


등기도 아닌 이 커다란 서류는 무얼까.

건물 앞에서 담배를 한대 태우고, 서류를 집어 뺀다.

나는 이 서류에도 코로나가 묻어있을지 모른다며 손끝에 온 힘을 모아 끄트머리를 잡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손 끝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집 안을 들어서자마자 손을 씻기 전에 봉투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주택 공사에서 온 서류.

그곳에는 잊혀진 이름 석자가 써있다. 

아니. 잊히지는 않았으나, 나와 상관없어진 지 오래인 사람의 이름이 써있다.

그리고 그 세 글자 앞에는.

(망).


나에게 A3서류봉투의 공포감을 심어준 작년 9월 16일 이후로

나는 엄마와의 연락을 끊는다.

종종 그녀에게서 문자나 전화가 올 때면 필사적으로 피하거나,

온갖 아픈 말들을 쏟아내며 나를 찾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한다.


(망).

코로나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무서울 게 없다.

바로 서류를 찍어 엄마에게 보낸다.

그녀가 그것을 확인하는 단 몇 분의 시간도 기다릴 수 없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 이거, 죽었다는 거지?


엄마 역시 어리둥절하다. 아마 그녀에게도 그런 표기는.

그런 서류는 익숙한 것이 아닐 테다.

근 반년만에 딸에게서 온 전화, 반가움이 가득했던 목소리가 곧바로 식어버린다.


- 왠지 그런 뜻인 것 같네.


나는 3분을 운다.

딱 3분만 운다.


반년만에 재회한 모녀는 3시간을 넘도록 통화한다.

햇수로 18년, 내 유일한 소원이었던 말.

엄마는 내게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있음을 인정해주는 말, 그토록 듣고 싶어 발버둥 쳤던 말.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의 세상에 다시 엄마가 들어왔다.

나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빠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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