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취준생 엄마의 우당탕 일기

프롤로그

by 가을웅덩이

10여년 전 두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갔을 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경제적 독립을 이루리라는 기대감으로 즐겁게 두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지냈다.

그 사이에 세상은 급변해서 학벌보다는 자격증이나 기술이 훨씬 인정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취업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아들은 4년째 취준생이다. 3년 정도는 서울의 학원가에서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시골인 집에 내려와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한 편은 안 쓰럽지만 한 편은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듯 갑갑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들이 오기 전에는 나의 루틴들이 제법 꽉 차 있었다. 온라인 강의도 여러 개 듣고 있었고 북클럽도 세 군데나 되었으며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직장과 교회와 관련된 오프 모임도 틈틈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꽃이 피는 봄에서 가을에는 여기저기 꽃구경 다니느라 주말은 항상 시간표가 꽉 채워져 있었다.


수요일이면 집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와 조각케이크를 먹으며 글을 쓴다. 블로그에 일상을 담은 짧은 글을 쓰기도 하고, 사진 위에 짧은 시를 넣은 카드를 글그램으로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다. 책을 읽고 마음에 닿는 단어를 만나면 글을 쓰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오뚜기 공모전에 에세이를 출품하기도 했다. 한 주간 중 월, 화, 목, 금이 출근하는 날이라 수요일만큼은 나 만의 시간으로 오롯이 보내게 된다


작년 12월, 아들이 이 시골집으로 내려온 이후로는 나의 패턴도 많이 깨어졌지만 그래도 수요일의 누림은 놓지 않는다. 나를 단련시키고 나를 다독이는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나의 글들이 탄생하고 영상이 만들어지고 예쁜 시카드가 선보일 수 있기에 내게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루틴들과 모임들은 모두 보류되고 미루어졌다. 엄마로서 왠지 나돌아 다니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집밥을 챙겨주어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감에 장거리 모임은 약속을 잡지 못했으며 잠깐씩 모이는 만남도 횟수를 줄여야 했다. 아들이나 가족들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공부하는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수요일이다. 아들에게 김치를 넣고 끓인 돼지갈비찜으로 점심을 먹이고, 가방에 책이랑 폰이랑 노트북을 넣은 후 동네에 있는 이즈원 카페로 향한다. 꽃이 다 떨어진 벚나무의 푸른 잎과 영산홍들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글감이 송송 올라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