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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과 칼국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삶

by 가을웅덩이



이른 점심을 먹은 터라 저녁이 되니 허기가 찾아왔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가까운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25년 전 이 동네에 이사를 왔을 때부터 장사를 하던 칼국숫집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딸이 와서 노부부와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여든이 다 된 어르신은 올해 초만 해도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셨다.

지금은 매장 안에서 서빙하는 것과 계산하는 것을 담당하고 계신다.


계란 칼국수 두 개와 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

한적한 탁자에 앉아서 각자 폰을 들여다보며 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뜨거운 칼국수를 후후 불어서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허기진 삶을 채우기 위해 채우는 나의 루틴들이 떠올랐다.

루틴들이 없었다면 무작정 흐르는 시간 앞에서

얼마나 허기져 있었을까?


후루룩 먹다가 사래가 걸려 잠시 물을 마시며 목을 달랬다.

살면서 뜻하지 않은 사래가 걸려 발목을 잡을 때가 한두 번이었던가?

그래도 다시 칼국수를 입속으로 집어넣듯

그렇게 꾸역꾸역 지나온 시간도 있었으리라.

가지런히 썰어 놓은 김밥을 먹으며 나머지 허기를 채우고 있다.

올 때는 가지런히 예쁘게 놓여 있던 김밥도 오늘따라

젓가락으로 집을라치면 속이 터져서 이리저리 널브러지고 있다.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걷잡을 수 없는 여울목에서 헤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을장마로 내리는 비와 칼국수 그리고 김밥.

허기를 채우는 시간과 허기를 채우는 삶이

가을비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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