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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차 기계들

제일 먼저 고장 난 것이 나였다

by 가을웅덩이

지금 다니는 요양병원은 2016년 이곳 집 가까이에 지어졌다.

집과 교회를 오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터를 고를 때부터 인연이 되었다.

3년 동안 다녔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취직할 곳을 찾고 있던 터라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이곳에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병원이 지어지고 한 달이 지난 후 사람인 구인란에 공고가 올라왔다.

처음 약국에 들어섰을 때 전자동 포장기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당시에 규모가 제법 큰 요양병원에서도 보기 힘든 기계였기에 만족스러웠다.


어느새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더불어 약국에 있는 기계들도 서서히 노후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고장 난 것이 나였다.

근무한 지 3년이 지나던 연말이었다.

하혈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을 때 자궁에 근종이 갑자기 자라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에는 6개월 정도 쉬면서 몸을 추슬렀다.

다시 복귀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명치를 누르듯 아파오는 통증으로 응급실을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담석통이었다.

태어나서 느끼는 가장 높은 수치의 통증이었다.

결국은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로 종지부를 찍었다.


기계들도 하나 둘 고장이 나고 있다.

작년부터 프린트기가 처음 시작할 때 웅장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4용지를 잘라서 사용했었는데 자른 부위의 먼지가 원인이었다.

불량토너도 한몫을 했다.

A5용지를 사용하고부터는 소리 횟수가 줄었지만 한 번씩 노쇠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전자동포장기인 대형 기계는 오던 다음 해부터 말썽이었다.

AS기간이라 부품도 여러 번 교환을 했지만

장마철이 되면 프린터 부위의 센서 작동을 읽어주지 못해서 멈추곤 했다.

올해 들어서면서 화면터치 센서 기능도 약화되어 유선마우스를 연결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는 지금까지 별 무리 없이 작동되고 있다.


어제는 전자동 포장기 회사 판매 직원이 다녀갔다.

내년에는 기계 가격이 20% 인상하기에 안내차 왔다고 했다.

우리 병원 기계의 기종이 양산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기종이라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내년에는 고장이 나서 바꾸려면 인상된 가격으로 사야 하기에

차라리 올해 바꾸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교체유무는 병원 운영진에서 결정을 하겠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현재 잘 돌아가고 있는 기계를 선뜻 바꾸기에는 아쉽고

수명이 다 되어 간다니 갑자기 멈출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첫 멤버로서 같은 세월을 살아온 기계라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느껴진다.

함께 일해 온 동료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으니 더욱 그렇다.


8년 차 기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고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내 모습이 반영되기도 한다.

이왕이면 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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