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울음들이 결국 내 가장 선명한 추억이 될 거라는 걸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밤이 이렇게 길고 고요하면서도, 동시에 끝없이 소란스러울 수 있다는 걸.
우리 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100일 동안, 밤낮이 뒤바뀐 채 살았다.
문제는 잠을 자지 않는 새벽이면 울음을 멈추지 않고 안아줘도 울었다는 것이다.
흔들의자에 눕혀서 흔들어줘도 울고 정말 악을 쓰는 아이가 밉기도 했다.
난 졸다 깨다 반복하면서 아이를 달래느라 제정신일 때가 거의 없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그 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지나고 있었고, 작은 아기의 울음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달래고, 안고, 토닥이고, 젖병도 물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온몸이 무겁고, 정신은 흐릿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차가운 거실 바닥을 맨발로 걸으며 아기를 안고 창밖을 바라봤다.
깊은 새벽,
아파트 창문마다 불이 꺼져 있었고, 그 속에서 깨어 있는 건 우리 둘 뿐인 것 같았다.
남편과는 주말부부인 상황이어서 난 독박육아나 다름없었으니 남편이 더 원망스러웠다.
너무 화가 나서 새벽에 전화를 해서 왜 나 혼자만 이래야 하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왜 이렇게 우는 거야...'
속으로 수십 번도 넘게 중얼거렸지만, 그 울음 사이사이 아기의 작은 몸을 어루만지며
아이는 원래 이런 거라고 이해해 보려 계속 노력을 했다.
이 아이도 낯선 세상이 불안해서 우는 거라고, 잠드는 게 어렵고, 배가 아프고,
뭔지 모를 답답함에 울어버리는 거라고.
그렇게 나도, 아기도 새벽을 함께 버텼다.
울음이 그치지 않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 아이가 고단한 숨을 내쉬며 내 품 안에서 잠들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너무 많은 밤을 지새우며 울었다. 아이와 같이 나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땐 정말 모든 게 원망스럽고 내가 아이를 왜 낳았을까라는 하면 안 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때 느꼈다.
밤을 버티며 배운 것들은 고작 육아법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씩 '엄마'라는 사람으로 깨어나고 있었고,
사랑은 그렇게, 새벽마다 울음과 함께 깊어지고 있었다.
고단한 새벽,
그 울음들이 결국 내 가장 선명한 추억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