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말꽃, 그리고 엄마의 기다림

by 라라



보통 아이들이 24개월쯤 되면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 나이가 되도록 “엄마”, “물”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말을 하지 못하니 아이가 원하는 걸 알아채 주기도 어려웠고, 아이도 본인이 원하는 걸 받지 못하니

자주 짜증을 내며 몸부림칠 정도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 생활도 점점 힘들어져 선생님께서 언어치료를 권유하셨다.

사실 나도 고민은 하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 예약을 잡았다.

그런데 아이는 검사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처음엔 낯설어서인지 내가 함께 들어갔는데, 아이는 내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옆에서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긴장했는지 통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선생님과 조금 친해졌는지, 아이는 놀잇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치료를 받으러 꼬박 1년을 다녔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이가 조금씩 말을 하려 하고 의사소통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욕심이 나 더 열심히

치료를 받고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말이 늦은 게 엄마가 말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로 내 마음에 비수를 꽂을 때가 많았다.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어린이집에만 맡겨 두었던 게 늘 미안했다.

그 당시엔 “엄마가 애기한테 말을 많이 해줘야 한다”는 소리만 들으면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아침,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물 주세요. 사랑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이를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말문이 트인 우리 아이…

남편을 붙잡고, 우리 정말 고생 많았다며 아이가 드디어 말을 한다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아이는 잠잘 시간도 모자랄 만큼 수다쟁이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한꺼번에 다 쏟아내려는 듯, 끝없이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시댁에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 아이들 중에는 말이 늦은 아이가 없었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의미 없는 말들이 오히려 속을 더 상하게 했다.

나는 그냥 무시하며, 어린이집에 오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만 했다.

시댁 어른들은 아이가 말이 느리다며 속상해하시면서도, 치료는 왜 받으러 다니냐며 아이러니한 말씀들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서러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두 번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그 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문득 뒤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너무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결국 우리 아이는 스스로의 속도로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워 주었고, 나는 그 길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아이가 쏟아내는 끝없는 수다가 가끔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겐 여전히 소중한 선물이다.


언젠가 아이가 더 자라 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엄마는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던 너도, 그리고 그때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맙고, 사랑해.

잘 이겨내 주고, 견뎌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무너지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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