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나를 마주하다

권태

by 라라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며, 짧은 여유가 생기면 어제 읽다 만 책의 몇 줄을 다시 넘겨본다.

혹은 다이어리 한편에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듯 몇 자 끄적인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톱니바퀴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환자들이 몰려들고, 나는 익숙하게 주사기를 들고 팔에 바늘을 찌른다. 환자들이 “아파요”라고 말해도, 이미 내 손목과 손가락은 통증에 마비된 지 오래라 그 말이 온전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피를 뽑고 나면,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없이 또 다른 환자들이 밀려온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천천히 지나가기를.”

월요일은 유독 버겁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흐릿한 내 삶에서, 유일하게 월요일만은 ‘다른 하루’다. 그래서 커피는 오후에야 마신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지는 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바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바쁠 땐 내 안에 무언가 텅 비어 가는 느낌이 든다.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 허무하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삶은 안정적이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 안에서 조금씩 닳아간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영어 공부였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 속에서, 일상을 의미 있게 채워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마저도 일상이 되었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또 다른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 모든 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은 건 아닐까? 삶의 텅 빈 공간을 메우려 애쓰지만, 가끔은 내가 만든 틀이 또 하나의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불안이 밀려올 땐, 나는 손에 청소기부터 든다.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한다. 마음을 닦는 일은 물리적인 공간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청소가 끝나면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는다. 작은 정성과 손길이 내 존재감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일상의 역할을 다하고 나면,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혼자만의 아지트로 향해, 넷플릭스를 켠다. 누구와도 함께 보지 않는다. ‘혼자’라는 상태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온전한 자유와 위로. 타인의 시선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마흔이 넘어 삶을 뒤돌아보면, 분명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특히 서른 즈음, 가세가 크게 기울며 삶의 바닥을 치는 경험은 오래도록 나를 흔들었다. 그 후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문득 찾아오는 공허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몰래 괴롭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내면은 조용히 일그러지고 있음을 안다




삶의 권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다.

어떤 이들은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하겠지만, 나는 태생부터 예민한 사람인지라 그 권태조차도 깊이

끌어안고 앓는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아이들과 남편,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내 몫의 성장은

멈춰 선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걸까?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선, 아마도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할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권태와 불안의 순간들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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