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너에게 묻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운명에게 묻는다

by 라라



어젠 회사에서 ChatGPT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대충 알고 있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ChatGPT로 사주를 많이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주도 본다는 얘기에 교육이 끝나고 아이들의 생일을 넣어서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 둘 다 성격과 취향 등이 전혀 반대로 나와서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씩이나 했는데도 똑같이 나와서 아이들이 나중에 성격이 바뀌려나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신기해서 아이들에게 읽어 줬더니 엄마 그거 정확하지 않다면서.

그리고 난 그런 성격도 아니고, 리더십도 없다는 둥 발표도 잘 안 한다는 둥 정말 틀리다면서 엄마 쓸데없이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 나무랐다.

흥, 맞으면 좋은 거고 안 맞으면 뭐 재미로 하는 거지.라고 혼자 생각했다.


내 사주도 봤는데 나는 정말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왜 우리 아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성격과 다르게 나오는 거지?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왜 있는지, 이 길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을 때.

어디선가 어긋난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모르겠고, 남들이 말하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


그럴 때 나는 문득, 운명을 떠올린다.

네 글자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는 그 고요하고 오래된 방식.

태어난 연월일시로 그 사람의 기질과 흐름을 이야기하는 사주라는 이름.



운명이 전부라면, 노력은 안 해도 되는 걸까?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 삶이라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론, 운명이란 것이 꼭 정해진 길만을 뜻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주는 내가 가진 기질의 지도를 보여줄 뿐,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는 여전히 나의 몫이다.




나는 가끔 우울해진다.

끈기는 있지만 한 번에 확 지치기도 한다.

사주는 나의 약점을 말해주고, 나는 그런 나를 자주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운명이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면, 그걸 어떻게 비추고 써나갈지는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운명에게 묻는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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