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쓰담 쓰담 05화

짧고 굵었던 어린이집 선생님

그래도 행복했다.

by 라라


나는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 광팬이다. 책도 영화도 10번은 넘게 본 거 같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어떤 날은 기분이 우울해서....

괜히 슬퍼지면 펼쳐보고 패드를 켜곤 했다.

내 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가 책과 영화에 나오는 지영이에게 투영이 된 것 같았다.

그 시대에 지영이는 다 그랬을까?

하지만 지영이처럼 행동하는 나에게 다들 위로보다는 예민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해서 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진짜 지영이는 위로를 받으며 상처치유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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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라면 다 알겠지만 김지영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게 된다.

나도 역시 8년 정도 경력단절을 겪었다. 더군다나 남편과 주말부부를 하고 있어서 나는 독박육아로 인해

항상 기진맥진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울증까지 덮쳐 치료를 받고, 둘째가 7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내일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병원근무 특성상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해야 해서 도저히 병원에서의 근무는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난 몇 년 전부터 힘든 몸을 이끌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놨었다.

처음엔 오후에 보조교사로만 일을 했었는데 원장님의 권유로 인해 어린이집 담임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담임을 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 엄마가 출근하고 20분 정도 있다가 혼자서 학교에 가면 된다고 했다.

엄마 일하고 싶으면 일하라고... 말하는 게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둘째를 7살 반으로 등록을 하고 나와 같이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하게 되었다.


난 5살 반을 맡았는데 처음엔 긴장도 되었지만 보조교사 할 때 봤던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친근하고 더

설레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어린이집 교사는 이게 아닌데 난 그동안 아주 큰 착각과 오만에 빠져있었었다.

그동안 아이만 맡겨놓고 집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에 감사함이 절로 날 정도였다.


교사를 하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너무 힘이 들어서 항상 벼랑에 선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너무 예쁘고 귀엽지만 현실은 그게 다가 아님을 한 달도 안돼서 알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의 얼굴을 잘 무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내가 잠깐 뒤돌아 있는 사이 다른 여자아이의 얼굴을 물어서 이빨 자국을 남기고 물린 아이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나는 원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병원으로 정신없이 갔다.

병원에서는 움푹 파여서 침독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졌다.

어머님께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고 정말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또 한 번은 안경을 쓰는 아이가 있었는데 너무 발랄하다 못해 천진난만한 남자아이는 본인의 에너지를

내뿜다가 혼자서 넘어져서 안경을 부러트린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책임이니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또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그 아이는 그 이후로도 안경을 한번 더 부러트렸지만 다행히 어머니께서 이해해

주셨다. 나의 가슴은 하루에 수십 번씩 부아가 치밀었다가 언짢을 때가 많아졌다.


아이들의 액세서리가 없어지면 내가 사다 드리기도 하고, 수업참여를 제대로 못하는 아이나, 밥을 먹지

않고 장난을 치거나 옆에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내 옆에 앉혀놓고 수업을 해야 했다.


행복한 날도 있었지만 힘든 날이 너무 많았던 기억...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동료 간의 관계는 좋았다.

하지만 나는 1년 6개월 정도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딱 그만두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그만두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도리라 원장님도 수고했다고만 하셨다.


와~~ 드디어 탈출^^

아이들아 미안하다.

너희들이 미웠던 건 아니야, 무지무지 귀엽고 예뻤단다.

선생님이 체력이 딸려서 그랬나 봐.!


그렇게 달콤 살벌한 1년 6개월간의 어린이집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경력단절 치고 처음 시작한 일이 너무 살벌해서 난 당분간 집에서 처박혀 있었다.


한 때 멈춰야 했던 걸음. 잠시 놓았던 이름, 세상은 잊은 듯했지만

나는 나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시작한 그 용기, 경력의 공백이 아니라, 인생을 이해했던 시간이란 걸 난 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건,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고, 나만을 위한 성정과정인 것이다.


지쳐도 괜찮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미 나는 대단한 길을 걸어왔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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