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사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30대 때 진주종중이염 수술로 인하여 청력이 거의 70대 노인의 수준이라고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소리들에 예민해지고 무척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가족들이 작게 말하면 잘 들리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병원에서는 보청기를 껴도 되긴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이니 너무 일찍 끼는 것보다 한쪽 귀 관리를 좀 더
잘해서 더 나빠지지 않게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라는 소리를 하셨다.
식구들이 집에서 작게 말하면 내가 두 번 세 번씩 되물으니 어느 순간 나에게 말을 잘 안 거는 게 느껴졌다.
서운하면서도 나조차도 다시 물어보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지쳐갔다.
그냥 서러움이 몰려오는 날도 많았다.
작은 속삭임은 놓치기 일쑤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도 자주 흘려보내곤 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건지 원망도 했다.
난 속으로 다짐한다.
“귀가 어두운 건 조금 불편하겠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라고...
하지만 나는 단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놓치곤 하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할 때가 많다.
누군가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말,
멀리서 부르는 반가운 인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섬세한 숨결 같은 소리들.
그것들은 나에게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건
“방금 뭐라고 했지?”라는 질문과, 그 순간을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식구들에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다.
다 알다시피 내가 오른쪽이 잘 안 들리니 힘들겠지만 목소리를 조금만 크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다. 그 뒤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했지만 가끔은 잊고서 평상시처럼 말할 때가 있곤 했다
그래도 조금씩 이해해 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직장을 몇 번 옮겼는데 옮길 때마다 채용검사 시 하는 청력검사가 문제였다.
나는 할 수 없이 나만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삐~~~~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오른쪽 손을 들고, 삐~~~ 소리가 나면 왼쪽 손을 들었다.
다행히 건강검진 시에도 무사히 넘어갔다.
한쪽 귀라도 들리는 지금 이 상황이 참 감사하지만, 이런 상황은 날 힘들게 할 때도 있다.
TV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내 귀의 기능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단어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을 때가 많고 저음 소리의 발음의 특히 안 들리곤 했다.
그리고 수년째 오른쪽 귀에서는 다양한 이명소리가 난다
병원에 가도 이건 방법이 없다. 무조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스트레스....
어떻게 해야 안 받을 수 있을까?
참 어렵다...
한 번은 보청기를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보청기도 다양해졌다.
예전엔 사이즈가 크고 밖에서 보면 보청기가 보였는데 지금은 무슨 이어폰처럼 사이즈도 작고
색깔 모양도 다양해져서 보청기인지 잘 모를 정도이다.
한번 알아봤을 뿐인데 잊을 만하면 보청기회사에서 문자가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난 아직은 아니야 하면서 그냥 넘긴다.
그래서 나는 눈으로도 같이 듣는다.
사람의 표정에서, 손짓에서, 눈빛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까지 들으려 노력한다.
때로는 소리보다 더 깊고 섬세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을, 나는 조용한 세계 속에서
천천히 알아간다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이 귀는,
불편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멈추고, 바라보고, 마음으로 듣는 법을 배웠다.
그 덕분에 나는 작은 떨림에도 쉽게 울컥하고, 조용한 순간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나는 잘 들리는 한쪽 귀에 감사하며
귀가 아닌 마음으로 사라지는 소리들을 꼭 안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