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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pr 12. 2020

삶 16

쫄떡군(쫄면+떡볶이+군만두)

쫄떡양이 아니고 쫄떡군. 어릴 적 좋아했던 입맛은 지금도 감기 몸살 기운 있으면, 코앞에 누군가가 한 그릇 뚝딱 대령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무엇이라도 채워서 뒤숭숭한 마음을 잠재우려고 열심히 먹었나 보다. 많이도 먹었다.  


광화문 당주당과 미리내 뒷골목. 쫄면과 떡볶이 가게가 즐비했는데 지금은 흔적 조차 없다. 3년 전 광화문에서 무교동까지 눈을 부릅뜨고 찾으려 했으나 한컷 멋을 내며 차려입고 들락거리던 경양식 집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군만두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섭섭해서 쫄면과 떡볶이를 먹고 시간을 질질 끌며 마무리했던 코스요리다. 입안이 얼얼할 때 고소한 기름기와 뜨끈한 만두는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의 혀를 진정시켜주는 진정제였다. 10대의 뱃구레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고 뒤돌아서면 또 배가 고팠다. 내일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콧물은 맵고 뜨거운 만큼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고등학교 동창생 k는 너무 풀어대서 새빨개진 내 코만 주야장천 이야기했다.



먹고 나오면  '빗속을 둘이서'라는 노래를 버스정거장으로 가는 길에 조심스레 불렀다. 억압을 해야 했던 용광로 같은 사춘기 시절  멜로디와 가사에 눈물도 흘리며 친구들과 수다로 이팔청춘은 휘리릭 지나갔다. 


그저 깔깔대며 친구와 변덕을 떨 수 있었던 그때, 사랑도 하고 싶고 철학자도 되고 싶었다. 3개의 기타 코드를 알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C장조 a마이너 d마이너로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고뇌를 씹어 삼킬 듯이 세상 멋있게 흥얼거리며 함께했던 쫄떡군. 


몸이 기억하는 입맛은 어떤 진수성찬보다도 쫄떡군이 맛있다. 지금도 중국집에 가면 배가 불러도 군만두를 주문한다. 아마도 그 시절도 매운 쫄면과 떡볶이를 콧물 눈물 흘리며 먹고도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서, 새콤한 식초 간장에 당면 가득한 만두를 찍어 먹었던 그 만두가 그리워 시킨다. 만두 먹다가 엄마한테 야단맞았다고 울던 동창생 G, 비어있는 듯한 마음은 빛깔과 모양은 다르게 여전히 만두소처럼 꽉 차 있지는 않다.


작지만 훈훈했던 쫄면 집. 남학생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 친구들과 먹고 있는 옆자리를 비집고 앉아서 힐끔힐끔 주고받았던 안경 속 흔들리던 눈동자들. 빨리 지나가길 바랬던 10대의 시간과 좋은 시절이라고 우쭐대던 20대 초반이었다. 쫄떡군과 함께하는 일요일 추억여행.



2020년 4월 12일 바람이 많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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