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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형제 자식 5

짠하다

by 가람생각

일 년이 눈 한번 깜박했을 뿐인데 지나갔다면 과장법이다. 어찌 눈 한번 껌뻑했는데 지나갔겠는가.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세월의 빠름을 표현하는 레퍼토리다. 손주가 첫 번째 생일을 맞아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기특하고 예쁘다. 아들이 아들을 낳으니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할머니가 되었다.


작년 1월 "보헤미안 램시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피아노를 치며 불러대던 Mama~~ ooh. 아들이 학교 갔다 오면 현관문 앞에서 부르던 "엄마" 부르는 소리. 배가 고파도 배가 아파도 만 가지 마음이 섞어서 부르는 소리다.


나 역시 내 엄마를 불렀겠지. 불러대면 뭐든 나오는 만능 자판기처럼 척척 코앞에 대령했다. 재봉틀로 스커트를 만들어 주셨고 배가 고프다면 김치를 꼭 짜서 참기름에 밥을 비벼 김치김밥이 뚝딱. 초등학교에서 만들어오라던 걸레는 자고 일어나면 책가방 속에 두 개가 넣어있었다. 걸레라기보다는 빳빳한 작은 방석처럼 예뻤다. 생일날이면 까만 콩과 누런 설탕을 섞어서 달달구리 한 콩떡을 시루에 쪄주셨고 밥 먹기 싫다고 투정하면 저녁밥 지으실 때 밥 위에 개떡이 서너 개 놓여 있었다. 개떡 밑에는 밥풀이 몇 알 붙어 뜨끈뜨끈하고 쫀득쫀득한 개떡은 막내딸 저녁밥이다.


내 나이 28살 엄마가 돌아가시고 언덕이 필요한 송아지처럼 비빌 곳이 없어서 한참 헤매었다. 아들도 손주를 키우면서 내가 필요하겠지. 아들이 오래도록 부를 수 있고 언제든 부르면 나타나는 작은 언덕 위에 머물고 싶다. 손주 돌날 내 아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 아이가 태어난 추운 겨울날이 생각난다. 아들 돌날에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서 울었던 1986년 겨울. 손주가 좋으면서도 늙어감이 느껴져서 청승을 떤다.



2020년 4월 23일 맑으나 며칠째 바람이 많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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