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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y 07. 2020

흰머리로 살아가기 4

흰머리의 아우라

 한 달에 두 번은 걸쳐야 하는 염색 전용 셔츠는 염색약이 군데군데 묻어서 얼룩 강아지처럼 되었고, 염색 전용 빗과 그릇까지 들고 거울 앞에 서면 각설이와 친구 먹는다. 빗을 장구채삼아 타령장단에 염색약통을 두드린다면 각설이도 울고 갈 모습이었다.


  염색을 멈추기로 했다. 염색은 한 달에 두 번하는 행사였다. 한 번은 올라오는 뿌리 흰머리에, 또 한 번은 전체적으로 했다.  원 플러스 원 염색약을 대여섯 개 사다 놓아야 마음이 든든했다." 나 늙었어요"라고 광고할 일도 없었으니 염색을 해야 하는 귀차니즘은 감수해야 했다. 두피에 바싹 붙어 올라오는 흰머리는 염색약을 흠뻑 적셔 줘야 염색이 잘 됐다. 염색을 하고 하루 이틀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들듯이 두피에 까맣게 물이 들어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이 풍성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가끔씩은 두피가 벌게지고 가렵기도 하며 동전 모양으로 두드러기도 올라왔지만 모기 물린 것처럼 며칠 긁다 보면 대수롭지 않게 가라앉았다. 심각해진 것은 6개월 전이다. 점점 휑해지는 이마 위 머리카락은 한 가닥 두 가닥 세어볼 정도였다. 이쯤 되니 자발적으로 모발 크리닉을 찾았다. 피부과와 상의해보란다. 지나친 염색이 마음에 찔렸다. "있을 때 잘하지"라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는 듯했다.


 1983년 1월 29일 서울 신촌 현대 예식장. 매서운 추위는 하객들 코끝이 모두 빨갛게 되었고  "딴 딴딴 딴" 피아노 소리에 백발을 휘날리는 아버지 손을 잡고 결혼식을 올렸다. 꽃 피고 따스한 날이 천지 삐까리인데 이 추운 날 결혼하겠다고 설쳤던 것을 보면 콩깍지가 씌어 결혼했던 것이 분명하다. 내 나이 26살 머리숱과 눈썹 숱은 숯덩이와 견줄만했다. 미용사 손에 잡힌 한 다발 머리카락은 눈꼬리가 찢어지게 고무줄에 묶여 올림머리를 했다."머리숱도 많네"한마디 하고는 시커먼 눈썹은 지저분하다면서  부지 불식 간에 눈썹 칼을 오른손에 들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나는 눈썹을 검지와 장지 손가락으로 눌러 막았고  지금까지 눈썹은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아서 아버지 유전자답게 봐줄 만하다. 머리털이든 눈썹털이든 털 관계는 자신이 있었다.


 내 나이 35살 머리숱이 많고 머리카락이 두꺼운 것은 좋았으나 흰머리가 일찍 올라왔다. 1992년 3월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다. 운동장에서 거행하는 입학식은 얼마나 추운지 목과 어깨가 붙으려고 했다.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영환이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영근이 엄마 웬일이에요?  뒤로 돌아보니 영환이 엄마는 까치발로 내 뒤통수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수리 부분에 흰머리가 많이 보였나 보다. "그래요?" 하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은 흰머리 출몰로 길이길이 기억된다. 머리숱 걱정은 하지 않았으니 눈을 치켜뜨고 보이는 것은 뽑고 2년을 견디다가 염색을 시작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염색을 했던 나는 63세 손주가 하나 있는 할머니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을 믿는다'라는 글귀가 기억난다. 느지막이 머리털이 빠지는 바람에  흰머리를 선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하얀 머리가 나다울 것이다.


 흰머리로 버티기 6개월째가 된다. 눈만 뜨면 흰색으로 뒤덮일 기세였던 흰머리카락은 더디 올라온다. 아직은 염색 모가 많고 흰색과 검은색 경계선이 눈에 거슬린다.  2021년 1월 29일 결혼 38주년이 되는 날이면 얼추 백발이 된다. 그날이 오면 하얀 진주 귀걸이에 흰색 원피스를 입고 이마에 잔털이 빽빽하게 돋아나 목화솜 같은 눈발에 흰머리가 반사되어 한껏 반짝이는 흰색의 아우라에 모든 이들이 눈이 부셔 뒤로 자빠지기를 기대한다면 꿈이 너무 야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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