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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6. 2020

인연 7

결이 다른 사람.  안경점 K총각 이야기


나이를 먹어가며 여전히 힘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아도 엮이고 섞어진다. 머리 깎고 산으로 갈 수 없으니 사람도 가려서 만나고 말도 아껴가며 살 수밖에 없다. 결이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소음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안경이 소중한 내 몸의 일부분이 된지는 23년째가 된다. 시력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고마운지도 모르고 살다가 2.0이라는 시력은 사십 대 나이가 되면서 빠르게 마이너스 시력으로 바뀌고 돋보기를 코에 걸치는 노년의 모습이 되었다. 20년째 단골 안경원은 안경을 닦고 쪼여주며 예쁜 안경테 구경을 한바탕 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커피 머신 들여놨다며 자랑하는 주인장과 격한 공감을 하는 편안한 장소였다.


처음 만날 때 신혼이었던 주인장은 어느덧 중년의 남성이 되어 두 명의 총각 직원과 함께 일을 한다. 2년 전 일이다. 주인장이 아닌 K 총각에게 안경을 맡겼다가 낭패를 보았다. 렌즈와 안경테 사이가 벌어지게 마무리해놓고 90도 각도로 머리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가지 못해 다시 방문하여 얼굴을 붉히며 시시비비를 해야 했다. 세상 제일 싫은 부딪힘이다. 마무리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얼렁뚱땅 넘어가며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모르고 지나가면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오랜 시간 k 총각이 부정적으로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K 총각의 신뢰는 무너져서 보고 싶지도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주인장과 인연도 있고 안경을 버리지 않는 한 했던 곳에서 수리할 수밖에 없으니 또 찾게 됐다.


결이 다른 사람과는 안 맞아서 일까. 2년 만에 찾은 안경점에서 어제 또 사달이 났다. 염색할 때 쓰던 허름해진 안경이 다리가 휘었고 지금 쓰고 다니는 안경은 콧등에 실리콘이 찢어졌으니 고쳐야 했다. 안경점을 들어서니 K 총각이 혼자 서 있다. 주인장 찾기도 뻘쭘하고 해서 안경을 내밀었다. 안경을 밟았냐 엉덩이로 깔고 앉았냐 언어 성폭력 같은 단어를 쓴다. 대꾸를 하지 않으니 트럼프 대통령 이야기도 했다가 tv도 봤다가 수선을 한다. 화장실 문 닫치는 소리에 오른쪽을 쳐다보니 주인장이 걸어온다. 허해진 내 머리카락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염색 이야기로 푼다. 수다를 떠는 동안 K 총각은 여전히 안경을 주무르고 있었다. 안경 코 실리콘을 바꾸어달라는데 어찌나 시간을 끌던지 주인장이 안경을 달라고 하여 안경을 확인하니 안경알에 물방울 같은 무늬가 생기고 뿌옇게 된 것이다. "안경알이 왜 이래요? 와!" 이렇게 된 것은 안경점을 하면서 처음 봤다며 사우나에 쓰고 들어갔냐고 묻는다. 안경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쓰고 있건만 잘 쓰고 들어온 안경이 갑자기 안경알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스크래치가 많이 생겼나 싶어서 안경알을 교환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예진 안경알은 도저히 쓸 수가 없어 다시 안경점으로 갔다. 주인장을 안쪽으로 불러서 주인장이 없을 때 상황을 설명하며 k 총각이 무슨 짖을 했나 물어봐 달라고 했다. K 총각은 아무 일 없었다고 무표정하게 대답했고 주인장은 K 총각을 변호했다. 쓰지 못하는 안경이기에 그냥 두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한이 났다. 길어야 30분 지난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도무지 설명될 수 없는 상황이 옴팍 뒤집어쓴 것이다. k 총각이 2년 전 일로 주인장에게 호되게 야단맞아서 나에게 앙갚음을 했나 싶었고, k 총각을 옹호하는 주인장까지 괘씸했다. 1시간이 지났을까 주인장이 전화가 왔다. K 총각에게 다시 물어보니 무슨 짓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말을 안 한다고. 딱 잡아 때더니 침묵한다고. 가슴이 벌렁거렸다.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정확히 알아보고 똑바로 얘기하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달했다. 알겠다는 주인장 목소리도 떨렸다.


기가 막힌 상황의 결과는 일자로 된 안경 코 받침에 찢어진 실리콘을 바꾸기 위해 뜨거운 히터 바람에 안경을 넣으니 플라스틱 안경알에 부풀어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어찌 안경 전문가라는 사람의 행동인가. 자신의 안경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해하려고 할라치면 실수였다고 말할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몇 번을 딱 잡아 땐 거짓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롱당한 건가 아니면 그런 결을 가진 사람인가.


K 총각이 사과의 전화가 왔지만 편치 않는 것은 빠른 시간에 고쳐드리고 미리 지불한 안경알 값을 환불해 주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는다. 선행되어야 할 충분한 사과보다는 자신이 배상해야 할 금전적 이야기가 k 총각에게는 더 중요했나 보다. 감정에 생채기를 내고 오전 내내 안경점이라는 사업장에서 삭신이 쑤실 정도로 토로했던 진실 싸움의 결과는 전화 한 통으로 끝이 났다.


훈계를 하면 꼰대 노릇일 것이고, 참자니 열불이 나고, 그냥 넘어갔으면 복장 터져 죽을 뻔했을 거다. 주인장 전화벨이 울린다. 주인장은 힘든 직원 문제를 호소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울리는 목소리가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나보다. k 총각을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하며. 












2020년 11월 6일 흐림. 결이 같은 사람 하고만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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