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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0. 2020

흰머리로 살아가기 5

거울 앞에서

빠르다. 세월이. 흰머리로 살아보려고 애를 쓴 지도 11개월째 되었다. 거울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몇 센티 자랐나 확인하며 조급해하는 시간들은 지나갔다. 염색 모로 남아있는 검은색도 소중하게 느낄 만큼 되었으니까 말이다. 단지 새로운 감정 하나가 생겼는데 바람 부는 데로 맥없이 떨어져 길바닥에 누워있는 은행잎처럼 방바닥에 띄엄띄엄 보이며 청소기에 딸려 올라가는 흰 머리카락을 유심히 한 번 더 보게 된다. 왜 그럴까 생각 중인데 "이 머리카락이 내 것이야" 아직은 실감 나지 않나 보다.


백발이 될 것 같았던 머리카락은 그렇지는 않다. 염색을 하지 않아서 두피가 건강해졌는지 검은색 모발도 꽤나 올라온다. 그렇게 잘도 자라던 흰 머리카락은 마음먹고 기다리니 얼마나 더디 올라오는지 한 달에 딱 1센티 정도만 올라왔다. 어느 달에는 아예 멈춰진 듯 자라지 않는 느낌이 어찌나 지루하던지. 지금은 염색모 반 흰머리 반의 경계선은 사라지고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염색했던 모발은 점점 금색으로 변해서 생전처럼 쓰리 칼라 머리 색깔이 골고루 섞여있다. 


흰머리로 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매일은 아니지만 거부감보다는 생소할 때도 있고 신기할 때도 있다. 건강한 두피를 위해서 선택했으니 파마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짧은 생머리 단발은 검고 짙은 눈썹이 흰 머리카락에 대비되어 확 두드려져 보였다. 남성미가 풍부한 가수 나훈아 씨가 내 모습에 있었다. 미장원 주인장은 눈썹을 정리하라 하지만 모든 털은 소중하니까 정리할 생각이 없다. 처음 한두 달은 검은 머리카락 한올 없는 하얀 진줏빛 머리카락이 예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르고 보니 검은 머리가 섞여있어야 그레이 빛을 내며 보는 이들도 덜 놀랜다. 에센스를 염색할 때보다 충분히 발라서 그런지 흰 머리카락은 반질반질하게 윤도 나고 봐 줄 만하다. 잘라낼 끝머리 카락에만 파마를 하고 롤을 활용해서 굽실 굽슬하게 웨이브 만드니 나훈아 씨 모습이 덜 보인다.


의견들도 분분하다.

1. "어머나! 멋있어요 나도 54살인데요. 염색을 하지 않으면 몽땅 흰머리인데 용기가 나질 않아서요"

2."왜 염색 안 하니 껴. 염색하면 10년은 젊어 보이겠구먼" 

3. "나도 길러봐야겠어요"전체가 곱슬머리인 명예퇴직한 선생님은 지금 2달째 힘을 내고 있다.

4."원래 그렇게 하얬어요?" 

5."그쪽은 머리숱이 많아서 괜찮은데 나는 머리숱이 없어서 못해요"

6."저 머리도 괜찮다" 재래시장에서 젓갈 파는 아주머니 소리가 들린다.


5개월째                                                                           11개월째





2020년 11월 10일 맑음.

세월의 수고한 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거울 앞에서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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