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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3. 2020

가을 5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10월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게 됐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 가사처럼 뭐 딱히 사연도 없는데  말이다.


해 질 무렵 산책길에서 옥구슬이 양은 쟁반에 굴러가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50대쯤 보이는 동창생 7명은 달려있는 은행잎을 떨어뜨릴 만큼 큰소리로 웃어댄다. 아마도 가을 여행을 온 모양이다. 조용한 공원을 걷다가 이불처럼 깔려있는 은행잎을 보니 소녀 시절로 휘리릭 날아갔겠지. 노란 은행잎이 깔려있는 길바닥에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엎드려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절 한 번쯤 해본 포즈로 "까르르까르르" 숨넘어간다. 고린내가 진동을 하는 은행열매가 분명히 땅에 떨어져 있을 텐데 야단 났다. 옷과 신발에 묻어 어찌할 건가!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가 밟은 은행알은 스멀스멀 바람 타고 코끝으로 딱 뭐라 할 수 없는 꼬리꼬리 한 냄새가 올라온다.  "킁킁"거리고 땅바닥을 쳐다보며 징검다리 건너듯이 피해서 걷던 발걸음은 모두들 갔다 버리고 그대로 서있다.

너무 예쁘다.





어두워지려 하는 공원 벤치 뒤로 따뜻한 전구색 불빛이 들어온다. 조명 발에 은행잎은 지독한 냄새를 삼켜버렸는지  아니면 오래 머무르니 코가 무디어졌는지  다행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는 아주머니들을 옆으로 쳐다보고, 뒤 돌아 또 보며, 요란하게 웃어대는 아주머니 덕분에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머리 숙여 수북하게 쌓여있는 은행잎을  한 움큼 집었다. 출출했는지 바삭한 포테이토칩 같다. 아가씨 때도 해보지 못했던  머리 위로 날려보며  어색하기 짝이 없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눈이 예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빨간색 털모자를 쓴 여아와 엄마도 따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행복 바이러스가 팍팍 전염되어 지금 이 시간을 즐긴다.  은행잎에 누워볼 용기는 없으니 한참을 은행잎만 쥐었다 폈다 하면서 올해의 시월의 마지막 날도 추억이라는 보따리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2020년 10월 31일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트로트 버전으로 흥얼대며, 병아리색 은행잎과 같은 동심과 저무는 저녁을 닮은 60대 마음으로 들락날락거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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