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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Oct 28. 2020

가을 4

찐 가을이다

올해는 뭔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도 사치 같았고 어수선한 세상살이에 그럭저럭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도 놀랍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가을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 선선함에 놀라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니 눈도 부셨지만 잘 견디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한숨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났다. 조마조마하면서 원치 않는 불안과 한 몸 되어 살아간다. 여름 내내 강변을 걸으며 잔잔히 깔려있는 토끼풀 속에 네 개의 잎사귀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고, 하룻밤 사이에 가을로 변해버린 며칠 전 해 질 녘은 쓸쓸함이 나를 닮아서 외면하고 싶은 찐 가을이었다.


마스크 쓰기는 10개월이 되었지만 익숙하지 않다. 코까지 덥으니 안경에 김이 서려 죽겠고, 입만 가리자니 눈치가 보인다. 코 주변에 뾰루지 몇 개가 올라와 천 원짜리 면 마스크를 귀에 걸고 기모든 운동복 바지에 저녁밥을 먹으니 거불대는 눈꺼풀을 꿈적이며 강변으로 걸으러 나간다. 두툼하게 입은 겉옷 덕에 가을바람이 시원하다. 떨어진 낙엽을 굳이 밟고 싶지 않아 까치발로 피해 가며 하늘을 한 번씩 쳐다보고 점점 커지는 달도 확인하며 목을 젖히고 걷는다. 강변 옆 정비 공장을 지키는 큰 개소리가 어김없이 내 발소리에 반응하며 짖어댄다. 가을 저녁은 스산하다.


입도 닫고 눈도 감고 걷는다. 마스크 쓰지 않는 사람을 보면 괜히 화가 나려 하고 눈도 자꾸 째려보는 눈이 되려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말수도 줄어들었다. 모든 것들이 1센티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이유가 있던 이유가 없던 가을 저녁 걷기는 잠깐잠깐 마스크를 벗고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짧아진 해가 환한 대낮에 저녁을 준비하게 하고, 걷다 보면 추억에 젖어서 명치끝도 시려가며 만보를 찍는다.

지난 일요일 눈이 번쩍 뜨이게 한 벌레가 파먹어도 잘 버틴 네 잎 클로버와 동지도 아닌 오늘 한솥 끓여 놓은 팥죽이 잘 어울리는 깊은 가을밤이다.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맑다.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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