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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r 02. 2023

흰머리로 살아가기 9

염색샴푸


목덜미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캐시미어 스웨터가 차 멀리 나듯 답답해서 입었다가 벗었다. 무심코 창문을 쓰윽 여는 것을 보니 봄이 오셨나 보다.


흰머리로 살아가기 3년 하고 2달이 지났다. 노년이라는 나이에 뭐 그다지 별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지만 검은 머리를 하고픈 유혹은 늘 도사리고 있다. 점점 빠지는 머리카락을 잡고 싶어서 염색으로 괴롭힌 머리카락에 쉼표같이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고자 염색과 파마를 하지 않고 3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염색을 한다. 10년쯤 젊어 보이는 검은 머리에 만족도가 높다. 염색을 하고 첫날에는 내가 봐도 몇 년은 젊어 보이고 깔끔하다. 둘이 같이 걷다 보면 사람들은 나 한번 남편 한편 쳐다본다. 노인티를 팍팍 내는 흰 머리카락은 대부분 노년의 남자분들이 하는 것이고, 여자분들은 염색을 하는 추세이다 보니 반대되는 모습이 낯선가 보다. 혼자 다닐 때 못 느끼는 시선이 찝찝하고 거북하다. 무디어질 만 도한데 그렇지 않다.


염색 샴푸에 기웃거렸다. 성분을 꼼꼼히 따지고 조심 떨기에 대마왕답게 짧은 머리인 남편에게 임상실험을 해봤다. 성공한다면 흰머리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매일 써야 하는 샴푸이고 염색약에서 벗어나는 길이니까. 두 가지를 해봤다. 한 가지는 일주일을 써봐도 기별이 없고 한 가지는 누리 끼끼 해지며 두드러기까지 올라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버려버렸다. 보기 흉한 누런 머리카락을 견디지 못해 바로 염색을 해야 했다. 일주일은 벌게지고 가려워 고생도 했다.


목욕탕 구석자리에 옆 사람 눈치 보며 염색을 하는 아주머니 심정이 이해가 간다. 집에서 하자니 바닥에 염색약이 묻어 일이 많아지고 미용실 가자니 금액도 들지만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더해서 한겨울에는 춥기까지 보탠다. 그러니 따뜻하고 깨끗하게 정리되는 동네 목욕탕 구석자리가 딱이다. 염색을 하지 말라는 문구를 보면서도 뜨끈한 온기에 염색약 냄새가 멀리 있는 곳까지 전달되지만 단골이라 봐주는 주인장 백이 허용되는 한 늘 보는 광경일 것이다.



단발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쇼트커트를 하신 분이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흰머리에 단발머리는 안 예쁘다며 입을 떼지만  새로운 도전에 설렘보다는 익숙한 것에 편안함의 기울기가 기울어진다.

나다움에 걸맞게 살아간다.





2023년 3월 2일 목요일 맑음.

옷장의 가벼운 옷들을 입어보며 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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