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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0. 2019

배움 3

저 글 쓰는 여자예요




"저 글 쓰는 여자예요!" 정말 쑥스럽다. 입안에서 웅얼웅얼하다가 "뭐 하신다고요?" 다시 물으면 그나마 목구멍에서 침과 함께 꿀꺽 삼켜버릴 거다. 아직은 이렇다. 


 작년 겨울 상담과 관련된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했다. 그 덕에 의식의 확장도 됐지만 나는 누런 짠지가 됐다. "당신 나이가 몇 살이야! 그만해"하는 남편의 소리도 야속했고,  그렇다고 "그래 실컷 해"하는 소리도 싫었을 거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는 힘들었다. 프로이트의 심적 발달 5단계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 )를 외우면서  연습장에는 침도 묻어있고, 몇 번을 다시 마셨는지 커피잔의 입가는 커피 자국이 잔뜩 묻어있다. 책상에 엎드려  동그라미도 그리고 별도 그리고 나도 그려봤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적어보고 싶었다. 왜 사냐고 묻고도 싶었다.


  뜻밖에 글쓰기였다. 나를 느닷없이 온라인 메모 쓰기로 인도했다. 구하니 얻었다.  끈기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일 년을 매일 적어보고 있다. 점점 좋아지고 상도 탄다. 글쓰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60년을 살았다. 그런 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지우며,  글 옆에 채울 조그마한 그림도 그려보고 지우개 똥이 한바닥 깔렸다.  옛날 같으면  치우느라 난리 블루스를 칠판인데  나와 대화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집중한다. 시계를 자꾸 본다. 밥을 해야 한다.


  혼자 놀기에 재미를 붙였다.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즈음은  엉덩이가 의자에 본드 붙은 듯 앉아있다. 기약 없는 글쓰기이지만 열심히 써본다.  서로가 관계를 맺으며 '으싸으쌰'하면서 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있어보니 고독한 것도 차갑고  쓸쓸하다. 이래도 저래도 힘이 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매일 거울보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 수도 없지 않겠나!. 어쩌면 글쓰기는  적당한 시기에 찾아온 나를 꼭 닮은 친구 같다. 인생은 어차피 내 몫이다. 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누군가와 수다 떤다고 해결할 수도 없고 찾아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교과서대로 한결같이 살아지지도 않는다. 흔들릴 때  글을 써보고  고독할 때 글을 써 보려 한다. 소중함에 가치를 금방은 측량할 수는 없다.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가치를  알겠지만 머지않아서  "저 글 쓰는 여자예요" 하면서 자신 있게  예쁜 명함을 내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떨어진 낙엽만큼  쌀쌀해진 오늘 나는 글을 쓰고 있다.




2019년 11월 07일 쌀쌀하다. 떨어진 낙엽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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