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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1. 2019

나 6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도


                




                                      

딸아이가 어제저녁 12시가 넘어 카톡을 보낸다. 이번 학기 마지막 PPT 마지막 장이라고. 아마도 본인에게 하고 싶은 얘기일 것이고, 27년 공부만 하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되뇌는 글귀였을 것이다. 이 글귀 중"사랑하라' 사랑이 얼마나 하고 싶을까? 딱 사랑하기 좋은 나이에 눈만 뜨면 공부만 징하게 하니 얼마나 자신과의 싸움이 힘들까! 그 나이를 살아본 나는 그토록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없어서 부럽기도 하건만 사랑을 못 해본 딸은 사랑하고 연애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폰을 배 위에 올려놓고 단순 무식하게 생각해본다. 20대 죽어라 탈춤을 추었던 기억도 생각나고, 사는 것이 답답해서 목청 터져라 샤워하면서 노래 불러본 일도 있고, 돈은 늘 필요했기에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은 아니고 돈이 필요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도 했다. 나를 위해 쓰려고는 이토록 죽기 살기 벌려고 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식이라는 이름이 모질게 살아갈 이유를 정확하고 단호히 알려주었다. 사랑인지 뭔지 모를 콩깍지에 씌어서 지금의 남편과 살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너무 모질라 보이는데 내 사랑의 확신도 없이 선택한 못 내미라고. 하지만 나의 현명하지 못한 20대 사랑은 한 번에 상처도 싫었고, 남편과의 힘든 사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작정 살았다. 유한한 삶을 알면서도 어쩌면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고 사는 삶처럼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철학적으로 생각할 마음이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시어머님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서 한 달 남짓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 화장실을 가려고 어머님이 쓰던 화장대 앞을 지나갔다. 머리를 숙여보니 떨어진 머리카락과 벗은 그대로의 파자마가 벗겨진 그대로 있었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정리 하나 못하고 가는 거구나!. 그 이후 집에 돌아와 속옷 정리를 한동안 열심히 했다. 마치 내일 죽어도 속옷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말이다. 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또 흐트러뜨리고 산다. 그리고 부탁했다. 딸아이에게 내 속옷을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 없애달라고. 누구는 '죽었는데 무슨 소용 있냐 별 걱정을 다한다'라고 되받아친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은 자발없고 변덕스러워도 한결같은 마음이 나에게는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죽을 듯 힘든 날에도 그저 평범한 날에도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아름다움에 기준이 너무 광대하고 품기에는 애매하지만 '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곱씹고 곱씹으며 다짐했다. 외모는 포장보다는 최소한 깔끔하게, 내면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고공 행진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울을 본다. 속마음까지 보이는 거울을.




2019년 11월 11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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