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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2. 2019

삶 1

50일 남은 2019년























 속도감을 느끼는 차 소리에 눈을 뜬다. 곤히 자다가  바빠진 차 소리를 어찌 알고 깨는지 신체의 비밀은 늘 신비롭다.


 양팔 벌려 허우적거리면 폰이 잡힌다. 아침에 배달되는 편지 같은 카톡을 등 따습게 읽는 호사는 늘 감사하다. 평온한 가운데 울리는 수신 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더욱 이른 아침의 벨 소리는 그렇다."일어났냐?" "응 무슨 일 있어?"  절인 배추 주문할래? 늦었어. " 50일 남은 올해 해야 하는 김장 얘기로 언니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기를 박박 쓰던 삶은 여섯 번 변한 강산을 만나고 나니 수그러들었다. 올해가 50일 남았는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저 건강히 보내는 거다. 젊은이들 만난 날짜 기억하며 100일, 200일, 길게는 1000일 때마다 서로 챙겨주며  좋아 죽는 모습이 싱그럽다. 이제 나는 결혼기념일도 생일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벌써 캐럴이 울리고 설레는 마음은 예전이나 똑같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비스름하다. 하지만 뭔가 드라마틱 한 환상적인 생각에서는 벗어났다. 커피 향이 진하게 풍기는 커피집을 향 따라 들어가 보고, 호젓한 날은 산책로를 걸으면 그만이다. 용을 쓰고 나면  몸살이 찾아오고. 바쁘게 다니면 눈이 쑥 들어간다. 


 아들 초등학교 때 계주를 했던 기억이 있다. 마음은 결승선 앞을 통과했으나 나는 500미터 앞에서 다리가 꼬였다. 꼬였던 다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숭구리당당 숭당당"  문어다리처럼 그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멀쩡히 차려입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욕심이 가득했던 그때는 지나갔다. 다행도 움직임이 적은 글쓰기를 해보고 있다. 스쳐 지나간 무수한 캐릭터와 고래 힘줄 같은 인연들을 불러와 놀고 있다. 남은 50일 동안 몇 명의 캐릭터들과  더 놀 것이다.


 남은 올해도 그리 놀랄 일도 그리 아쉬울 일도 없이 고맙게  지나간다. 김장 얘기와 무거운 겨울옷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11월은 몇 밤을 자고 나면 과거라는 추억으로 넘어간다. 2020년 추운 정월에 지글지글 기름 냄새에  신 김치빈대떡  한 장을 초간장 찍어 먹으며  쩝쩝대는 소리를 추임새 삼아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세월이란 시간은 어찌도 이렇게 소리 없이 와서 소리 없이 가는 줄 모르겠다. 바람도 자기 소리를 내는데.



2019년 11월 12일 맑음  장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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